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러하듯 작가도 숭명멸청사상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데, 명나라를 지칭함에 있어 대명(大明)이라 부르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청을 오랑캐(胡)라고 일컫는 것은 이러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붙은 인물들을 비판하면서
되기도 하였다.
가사는 문학양식으로서의 그 이름도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사용되고 있다.
가사의 내용을 시대별로 대별해 보면 산수자연을 나타낸 것, 연군의 정을 그린 것, 유배의 울분을 엮은 것, 전하의 참변을 노래한 것, 기타 불교의 도덕관, 여정 등을 노래한 것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장편 기행가사(長篇紀行歌辭) 「연행가(燕行歌)」를 지었다. 대사헌·대사간·예조 참의(禮曹參議)를 거쳐 1884년(고종21) 감리인천항통상사무(監理仁川港通商事務)가 되고, 이듬해 인천 부사(仁川府使)를 겸임했으며, 그 뒤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沙通商事務)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