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했다. 회담 중에 박정희와 이케다 수상 사이에 “조속한 시일 내에 각 현안에 대한 원만한 타결을 보고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원칙에 서로 합의했다. 그러나 청구권과 관련해 양국은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일본은 한국에 대한 패전국이 아니므로 아무런 법적 배상 의무
외교적 노력으로서 지역 국가간 협력과 유대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후반이후 한국외교의 주요 방향은 통일을 추구하는 유대외교,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동맹외교,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경제실리외교를 추구하였다.
◆ 국내적 상황
박정희정권시절의 1960년대에 겉으로는 남
외교정책상의 대세가 되는 경향이 컸다. 그렇기에 냉전이 종식 될 때까지 한국의 외교정책이 큰 무리가 없이 진행되어졌던 것은 대체로 미국의 외교적 정책목표와 한국의 외교적 정책 목표가 합치되는 편이었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외교적 마찰의 부분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었다.
1.2. 한국의 외교사
박정희체제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데에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가지는 특성상 주장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편파성의 위험을 보완하기 위하여 토론의 공통적 주제였던 외교․경제의 각 측면을 고루 살펴보는 방향을 택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각의 근저에는 독재라는 기본적 판단
외교로서 반일 강경외교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으며, 제2시기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부에 의한 적극적 수교정책을 중심으로 하며, 제 2시기에 대해서는 양국수교 이후 전두환 정부에 의한 경제협력문제와 역사인식문제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제4시기에 대해서는 노태우 정부로부터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