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것이다. 그 여파는 러청북경조약(1860)으로 이어졌고, 구 결과 러시아가 한·만과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히 한반도로 전파되었으며, 다시 1880년대 초에는 한영수교에 뒤이어 한러수교가 이루어짐으로써 마침내 한반도에서 영·러의 본격 대립시대 즉 구미열강의 대결시대에 열리게 되었다.
1880년대 동북아 국제정치와 한국외교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거문도사건과 주변열강의 역학관계 및 조선의 국가전략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현재를 가늠해보려 한다. 거문도 사건은 1895년 4월 15일부터 1897년 2월 27일까지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장기간의 다국적 철수외교를 통해 해소된 국제정치
조선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친 ‘공로의식’은 모두 이 같은 영국과 러시아 대립구도의 산물이었다. 1885년 조선-러시아간 밀약설에 대응하며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했던 것도 영국과 러시아간의 대립구도에서 따른 것이며, 1898년 러시아가 요동반도를 조차하자 영국이 이에 대응하여 요동반도의 전략
열강의 편에 섰다. 그러나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른 삼국간섭으로 일본이 아직은 서구열강에는 미치지 못하는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곧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제국주의 국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에 관하여, 당시 아시아인이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