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C 국제정세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국제관계사에서 19세기의 세계는 흔히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시대(英露對決時代)라고 일컬어진다. 나폴레옹 타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영국과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그 뒤로 양국의 패권을 다툰 데서 비롯된 말이다. 러시아가 발칸과 중앙아시아, 동아
도착한 하나부사는 7월 7일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7개항의 요구사항을 제출하고 3일 내로 회답할 것을 통고했다.
한편 6월 18일 주일공사 리수창의 통지를 통해 군란 소식을 접한 청 또한 재빠르게 군대를 파견했다. 7월 7일 남양만 마산포에 도착한 청군은 서울로 들어와 13일 대원군을 전격
대원군과 명성황후를 거론할 수 있겠다.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그간의 국내외 많은 선행연구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의 이해의 틀이 정립되어 있지만,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이해가 대부분이거나 단편적이고 또한 허구성이 강한 소수의 기술이 있을 뿐이다. 다만 언론 매체를 통한 사극의 열풍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할 당시 조선을 점령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청, 영국, 미국, 러시아, 일본이었다. 그런데 청은 쇠퇴하고 자국마저 큰 위기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었고 미국과 영국은 조선의 영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