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불평등조약의 체결과 민중수탈의 강화
1. 개항과 불평등조약의 체결
-개항 이전의 국내외 정세
1860년대는 반봉건 농민항쟁이 폭발하고 서구 열강의 침략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개혁정책과 쇄국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는 왕실의 권위 회복을 위해서 세도정치
강화조약
조선의 독립 인정, 청국은 요동 반도, 대만, 팽호 열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
청국은 배상금 2억량(약 3억엔) 지불할 것, 시사, 중경, 소주, 항주 4개항 개항할 것 등
일본은 청국에 대해 구미 열강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치외 법권 포함 불평등조약 획득
3. 입헌정우회 결성
1) 배경
한국근현대사와 조선후기
조선후기는 중세가 소멸해 가는 시기로 상공업은 관(官)에서 조달하는 방식에서 팔기위한 상품의 제조로 옮겨가는 등 초보적 자본주의가 싹트게 되며, 전근대사회의 부(富)의 원천인 토지에서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의 발전으로 그 움직임이 서서히 옮겨가나 공장의 설
운동의 진압과정에서 우수한 서양 무기의 효력을 직접 경험하고 중체서용을 내세워 서양의 군대기술을 도입하고자 하였다. 양무파를 중심으로 군사적 자강과 경제적 부강을 목표로 전개된 운동이었으나 세 차례에 걸쳐 발생한 대외 위기 곧, 대만사건, 청․불 전쟁, 청․일 전쟁에서 한 번도 군
강화라는 구조적 다원화 경향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세기의 동북아 정치구조, 특히, 19세기 후반기의 동북아 정치구조는 영-러의 세계적 대립구도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 특히, 1850년대 발칸반도에서 1차 격돌 이후 1870년대와 1880년대 중동지역과 인도국경 부근에서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