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신교)는 큰 역사적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기독교선교역사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외래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접해진 것이 아니라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가 그 복음의 접촉의 시작이 자국인에 의해서 경험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복음 전파가 한결 쉽게 되었음.
(만주에서의 전도)
*중국을 통하여 한국선교를 시도한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만주에 진출했던 로스 선교사또한 한국에 대한 선교를 시도.
*로스 선교사는 쇄국정책의 한국이 언젠가는 선교의 문이 열릴것을 믿으며 성경번역사업에 전력을 기울임.
*성서
선교사의 도움 없이 의주교회를 이끌어 나갔다.<이덕주 {백홍준} 한국기독교사연구회 제19호 1988.4>}} 이때가 1879년이다.
{{전택부는 {한국교회발전사(한국교회발전사)} p 83에서 1876년 백홍준, 이응찬을 비롯한 4인(이성하, 김진기)이 1879년에 서상륜이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로스가 1890
기독교가 상대적으로 활성화 되어있다. 특히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2009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복지, 교육, 대북지원 해외원조, 의료, 나눔운동, 자원봉사 등 각 분야별 봉사 참여가 개신교가 월등히 높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전국 종합사회복지관의 종교별 운영주체 분류는 개신교 45%,
역사 교재임을 확신한다. “한국교회가 그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본인은 “한국기독교회사 1.2권. 바로 이것이다!” 라며 감히 본 저서들을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라한 무덤들의 보수와 치장도 중요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뿌리고 간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