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만들었고, 담징이 함께 전했다고 하는 맷돌은 종이와 관련 용구로 추측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제지에도 맷돌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이로 우리나라의 제지법이 중국의 종이 기술과 동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기록은 610년 전후가 우리나라 한지(韓紙)와 중국의 화지(華紙)가 구별되는
제지술이 유럽에 전하여진 8세기경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소아시아에 걸쳐 널리 보급되었다. 현재 영어 paper를 비롯하여 유럽 나라들의 ‘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파피루스에 연유한다. 이 때문에 파피루스를 종이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엄밀한 의미의 종이라고 규정짓기는 곤란하다. 그러
종이가 이미 다른 서사재료를 대치했던 284년에 백제의 아직기(阿直岐)가 일본에 전했다고 하는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 등이 종이 서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왕인이 천자문을 전한 것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채륜의 제지술 발명보다 180년이 경과한 후라고 본다면 서기 200년대 후반에는 제
종이는 단순히 기록 · 보전 · 전달이라는 의미 외에 기능적 측면으로서 인간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종이는 의식주의 생활과 관련하여 창조적이며 다양하게 재탄생된 것이다. 인류의 예술 활동은 종이 출현 이전 시기부터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다. 동양에서는 종이와 먹이 주요 기록재료인
5. 한지의 역사한지는 105년 중국 후한 때의 채륜에 의하여 발명되었다고 전해지나 발명이 아니라 개량했다는 설도 있다. 전상운의 한국과학사에 의하면 종이는 기원전 50 내지 40년대의 전환시대에 발명되었는데 105년경에 채륜에 의해서 품질이 좋은 종이의 생산이 확대, 보급되면서 제지 기술이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