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세기 후반의 홍콩인 사회
1842년 영국에 할양될 당시는 2,000명 정도의 토착민만 있었으나, 1850년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유입되고 아울러 자유무역항으로서 홍콩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홍콩의 인구도 늘어났다.
초기의 홍콩인 사회의 주
문화산업 수출의 최대 전성기라는 평가가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닌 상황이다. 기업과 정부의 대응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지 언론에 광고료 대신 한국 드라마의 방영권을 제공하는 등, ‘한류’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 개발과 기획에 관심을 쏟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야의원들이 초당적 모임인 ‘
지금 우리의 대중문화는 그 어떤 외교적인 노력이나 경제 협력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아시아 사람들의 가슴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심어놓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영화와 음악 드라마가 이런 역할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문화상품 하나로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문화적인 식민주의는 끊임없이 재생산, 적용되고 있다.
2. 식민지 유산?
① 홍콩 - 중국에 반환되기는 했지만 문화적인 정체성은 아직 영국의 지배 하에 있다.
② 우리나라에서의 일제의 잔재 - 언어 : 인명(子자-꼬), 지명(분당, 판교), 법률용어, 건축
교육 : 국민학교/교복/경례
③ 스포츠 - 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