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시간 이 점점 흐르며 일란성 쌍생아의 고향을 상실한 불우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화이트헤드는 물리학과 철학에 모두 능통한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과 철학을 이어줄 수 있는 당대의 수학자 논리학자로서 대성하였다. 그가 버트란트 러셀과 공동으로 저술하여 수학기초론과 현대
화이트헤드의 이설은 종래의 전통적인 철학 사상이 남기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난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인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그의 지각론은 근대의 경험론과 합리론이 가지고 있었던 난점들을 해소했다고 보아질 수 있다. 데카르트로부터 흄을 거쳐 칸트에 이르기까지의
론에서 보이는 뭐랄까, '원리' 중심주의 덕분이다. 그 유명한 '이데아론'이 바로 그것인데, 세계 만물은 그것들 각각의 '이데아'의 모사물이라는 것이 그 이론의 골자이다. 여기서 '이데아'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원리' 또는 '형상' 또는 '설계도'로 번역될 수 있는 근원 그 자체이다. 향연은 지성과 용모
론자였던 친구들을 러셀과 당시 10세였던 형 프랭크의 후견인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러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별 어려움 없이 아들의 유언을 뒤엎고 이들의 법적 후견인이 되었으며, 러셀과 형은 결국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할머니는 독실하면서도 정치적으로
헤드의 우주관이 깔고 있었던 20세기 과학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탐구해 들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리송하게 헤어지기가 태반인데, 혼자 화이트헤드를 전공했다는 말은 도무지 語不成說이다. 일본사람들은 {과정과 실재}를 번역하기 위하여 개념 하나의 번역을 놓고 몇 년씩 토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