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952년 전남 해남군 북평면 배다리에서 태어난 황지우에게 빨치산이었던 삼촌이 수장당한 앞바다와 그 바다에 떠있는 아버지의 고향 솔섬은 죽음의 이미지와 동시에 보다 나은 세상을 의미한다. 1955년 광주로 이주하게 되는데, 도시의 변두리에 자리 잡은 황지우는 폭력과 공포, 근대를 의미
세계를 죄의식으로 얼룩지게 만든 시기이다. 송지윤, 위의 논문, p. 2.
이러한 80년대의 암울한 현실에서 해체시는 갈등과 혼란으로 뒤엉킨 현실을 고발하며, 박남철, 황지우, 이윤택은 해체시의 1세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박남철은 다음에 제시된 평론에서 해체시의 지향성을 밝히고 있다.
1. 황지우 자신이 바라보는 황지우시: 모던 리얼리스트
황지우는 등단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실 도피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1980년대를 지나 그간 ‘모더니스트’라는 명칭으로 도피주의적라는 비판을 받았던 그의 시는 오늘날 저항성을 가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고 이와
시의 시대라 일컬어진다. 사실 이 시기에는 그 어느 시기보다 비판적 담론이 시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시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노동자시, 농민 시 등 민중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민중시의 다양한 형식이 모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Ⅰ. 1980년대의 세계무역
80년대 이전 세계 무역의 정책이 무역 보호주의와 자유주의가 서로 대립되어서 나타난 것이 특징인 반면, 80년대 이후의 변화는 무역 정책의 변화가 특정 시점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무역 정책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변화는 더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