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Ⅱ. 1980년대의 산업구조
우리나라 경제는 1986년에서 1988년에 걸쳐 實質국민총생산증가율 12%이상의 급속한 成長을 보이다가 1989년에 접어들면서 成長趨勢가 급격히 하락하는 局面에 돌입하였다. 무역수지에 있어서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의 黑字趨勢가 90년부터 다시 赤字로 反轉되었다.
세계경제의 핵심적인 가격인 환율과 금리에 대한 결정권이 각국의 정부당국과 관료의 손을 떠나 국제은행, 투기적 투자펀드, 초국적 기업 등의 손안으로 들어간 것 자체가 그 뒤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는 민영화의 첫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은 1979년 들어선 강경우파 대처정부에 의해 "시장이
노동집약적인 수출산업의 육성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정부는 개발전략 그 자체에 크다란 변경을 가하게 되었다. 정부는 계획기간 중 금리인상, 환율조정, 개방경제체제로의 전환 등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이 계획 수행의 과정에서 수출입링크제도의 강화,수출금융금리의 인하,한국무역
기업 합병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70년대에는 유가파동, IMF체제의 부분적 와해라는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감량경영과 수출드라이브정책 등이 집중적으로 강구되었다. 80년대에 와서 무역마찰이 격화되면서 지식집약형 산업육성, 해외 투자확대를 추구하게 되었다.
전후 일본산업정책의 흐
산업구조의 중화학 공업화가 주안점이었다. 그런데 계획의 중반에 박정희 대통령이 쓰러지고 제2차 석유파동(1980~1981년)과 정치혼란 등으로 80년에는 1.5%란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4차 경제개발기간 통산의 성장률은 7%를 기록하여 일본의 4.7% 성장을 능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