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김소월(金素月) 시인 본명 정식(廷式) 평북 관산에서 출생하였다. 곤관 공주 성도 의 맏아들이었고 외가에서 태어나 100일이 지난 후 본가로 갔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 솬산간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 사람 목도군에게 얻어 맞아 정신 이상 증세를 일으켜 부농인 조부의 훈도 아래 성장하였
김소월 산유화의 해석
「산유화」는 그 시적 형식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김소월의 시 세계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주목되어 왔다. 이 작품을 놓고 김동리는 `청산과의 거리`(『문학과 인간』)라는 말로서 소월시의 본질을 논한 바 있다. 그는 이 시가 자연을 동경하는 시인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
작품을 지상에 발표한 것은 1920년 ꡐ창조ꡑ 제 5호에 김억의 주선으로 낭인의 봄 등 5편이다. 오산중학교 4년을 수료하고 서울 배재고보 5학년에 입학한 1922년에는 김억이 편집을 맡고 있었던 개벽지에 무려 30여 편의 시를 발표하게 되는데, 그의 대표작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금잔디, 강촌 등의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