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평등과 거의 혹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며, 심지어 전체사회의 기능 영위와 존속을 위해 계층체계와 빈곤이 오히려 기능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측면을 지니기도 한다는 점에서 노동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이익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노동문제의 해결책이 설정
정치성향이 강했다. 일제에 의한 중국 대륙 침략에 있어서 첨병으로 뽑혔다는 점이 그들로 하여금 권력과 총구의 함수관계와 개혁과 군대의 역할에 대하여 눈을 뜨게 만들었으며 현실을 직시하도록 했다. 국가건설과 사회개혁에 대한 열정은 같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만군군관 학교인맥은 좌, 우로
정치적 공간 위에서 진행된 것들이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집념과 노력이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콤플렉스, 그리고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한 수동적이고 방어적 동기에 지배되고 있었으며, 미국의 지지를 얻고 북한을 이겨야 한다는 철저한 냉전 논리에 편승한 것이었다.
노동자의 철저한 연대주의가 있다. 대공황으로 대량 실업과 빈곤문제가 심각했던 1932년 정권을 잡은 사민당은 대공황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산업 노동자가 정치적인 기반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복지제도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1934년 사민당은 노조가 운영하는 실업보험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