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고부접주(古阜接主)로 있는 녹두장군(綠豆將軍) 전봉준을 선두로 마침내 울분을 터뜨렸다. 1894년 1월 10일 새벽, 1,000여 명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은 흰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몽둥이와 죽창을 들고, “전운사를 폐지하라, 균전사(均田使)를 없애라, 타국 상인의 미곡 매점과 밀수출을 막아라, 외
동학이 창도되어 농민대중 속에 침투되자 동학의 반봉건사상과 민족주의적 반외세사상은 농민대중을 크게 고무시켜 동학에 적극 호응하게 하였다. 결국 수백만의 농민이 참가하여 봉건사회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동학농민운동의 투쟁은 비록 일본과 손을 잡은 정부에 의해서 좌절
Ⅰ.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운동(1894)은 조선 말기에 자주 일어난 민란 중 전국적 범위의 가장 큰 농민반란이었다. 이 투쟁에는 동학당이 선두였기 때문에 동학란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나 실은 농민전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투쟁에 참가, 동원된 절대 다수가 농민(특히 빈농)들이었고 또
운동으로 근대화를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러한 양국은 조선을 각축장으로 삼았고, 특히 대일곡물수출은 일본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을 위해 곡 필요한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농민의 계층분화에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