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숭정제의 즉위
천계제 주유교는 16세에 등극하여, 7년간 황제를 지냈다. 천계7년 8월 22일 자금성 건청궁에서 사망하였고, 그때 나이가 겨우 23세때였다. 천계제는 재위 7년간 목수같이 살았고 황제 같지는 않았다. 그는 목수일에 재미를 붙여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며 국가대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
(崇禎帝也中了美人計。)
숭정제야중료미인계
숭정제도 미인계에 맞았다.
?因馬紹愉等赴?議和, 把松山失敗的將官, 一槪不問。
병인마소유등부청의화 파송산실패적장관 일개불문
마소유등이 청나라에 화친을 논의하러 가니 송산 전쟁을 실패한 장군관리를 일개 문책하지 않았다.
(吳三桂等運氣。
제위에 올라 북경을 도읍으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明의 숭정제의 장례를 치르고, 명의 관리로 항복한 사람을 승진을 시켜 그대로 일을 맡도록 하였으며, 세금도 정식 항목 이외의 일체의 부가세를 면제하는 한편, 의관과 예속도 명대의 것을 그대로 유지시켜 민심을 안정시켰다.
숭정제는 목매어 죽음으로써 명나라는 17대 277년 만에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자성은 북경에 입성한 지 얼마 안 되어 북경에서 쫓겨나고 만주족인 청나라가 결국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1. 명나라 정치
14세기 중엽, 몽골지상주의(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약 100년에 걸쳐 압정(壓政)을 펴온 원조에 항거
숭정제의 포악성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이때 천민 출신이었던 이자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명나라는 군대를 보냈으나 패하고 말았다. 이자성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낙양을 함락시키고 개봉과 시안을 점령했으며, 북경으로 진격했다. 이자성의 반란군은 승승장구하며, 북경에 들이닥친 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