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의 학살과 그러한 군부 탄압에 항거하여 전개된 광주 민중의 영웅적인 투쟁은 전두환 권위주의 정권이 그 나름의 정권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그러한 학살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권위주의 정권도 다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을 해석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미래의 지침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5.18은 왜 광주에서 시작되었으며, 5.18에서 김대중의 의미, 광주항쟁의 원인과 배경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이 사건의 배경과 상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언론보도들
⇨ 대부분의 언론들이 5월 18일에서 5월 20일까지는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고, 21일부터 조금씩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거의 광주 민주항쟁을 단순히 일시적 감정의 폭발로 발발한 사
배경으로 우리의 역사에 일종의 의문을 제기했다. 이문열은 훗일 '시대와의 불화' 란 산문집에서 자신이 왜 '어두운 열정에의 경사(傾斜)를 거부했는지' 를 해명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유후명의 '돈후의 사랑' , 샤머니즘 혹은 원시적인 신화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 한승원
왜 그리고 어떻게 주민들이 참여했는가?’이다(최정기 1997). 최근에는 왜 광주에서만 승인투쟁 혹은 절대적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하려는 연구가 등장한다. 구조적인 접근, 혹은 계급론적인 접근에서는 항쟁의 발발 혹은 항쟁의 원인에 대한 연구 속에 이미 참여의 문제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