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한국기독교의 뿌리는 만주에서만 발견되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활동한 이수정(李樹廷)은 성경번역 사상 놀라운 일을 하였다. 1882년 9월에 수신사(修信使) 박영효(朴永孝)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그 이듬해 1883년 4월 29일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례 받은
Bellah)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에게 쉐일라 라슨(sheila Larson)이라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 여자는 자기의 신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종교적 열광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언제 교회에 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신앙은 나를 데리고 먼 길을 왔다. 그 신앙은 쉐일
Bellah et al., 1991; Cnator, 1997 참고). 전쟁 후, 질서와 안전의 요구-정치적 문화와 경제에서 새로운 균일론으로 표현되었다- 는 합리성을 잃었었다. 중산 계층의 구성원들처럼, 지식인들도 증대하였고 리더십도 강화되었고, (현재의 우리처럼 일반적인 사람들로 인식되는) 새로운 관료들은 조사, 감독에 개방
계몽의 개념이 과잉 확장되어 성장해 왔다. 예컨대, 미국은 전통적인 미디어의 폐해로 말미암아 집단행위의 장점을 잃고 있고(Bellah), 사회적 선은 경제적 정의에 따르고 있으며(Fukuyama), 강한 지역사회가 강한 민주주의를 낳지만, 정보기술(특히 텔레비전)이 미국의 시민 참여를 퇴보시켜(Putman) 왔다.
Bellah, 1927~2013)
- 『도쿠가와시대의 종교( Tokugawa Religion: the Values of Pre-industrial Japan)』(1957)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윤리적 규범에 주목
- 서구사회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의 발흥을 가져오는 주요 요인이 되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도쿠가와시대의 윤리적 규범이 자본주의의 발흥에 공헌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