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會)를 발기하고 1908년 그 후신인 서북학회의 회장직을 맡기도 하였으며, 기관지 《서우》 《서북학회월보》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교육·학회 활동뿐만 아니라 《황성신문》이 복간되자 자리를 옮겨 10년 폐간될 때까지 일제의 침략상을 고발하는 언론활동을 계속했다.
이 밖에도 그는 1909년
김동삼(金東三) [金東三, 1878.6.23 ~ 1937.3.3]
1878(고종 15)∼1937.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 원명은 긍식(肯植), 호는 일송(一松). 경상북도 안동출신.
1907년 고향에서 유인식(柳寅植)·김후병(金厚秉) 등과 젊은 일꾼의 양성을 위해 협동중학교(協東中學校)를 세웠으며, 1909년에는 서울 양기탁(梁起鐸)의 집에서
民族主義 史學
1. 박은식(1859-1925)
① 생애
1859 황해도 황주출생. 본관 밀양 호 謙谷 白巖 太白狂老 無恥生
1888 민영준 추천으로 참봉 제수
1894 갑오농민전쟁 발발 강원도 은둔
1898 장지연과 함께 황성신문 주필 취임. 독립협회 문교부분 담당
이후 경학원 강사. 한성사범 교사. 개신유학 주도
1905 장지
독립전쟁
독립전쟁...사실 전쟁이라는 단어를 쓴 것 자체가 조금 이상했다. 전쟁이란 국가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무력싸움이라고 생각했고 그러기에 우리나라의 항일독립전쟁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이 아니라 무력
4. 개화기 시문학에서의 창작계층
4.1. 개화기 시가의 창작계층 연구
개화기 문학을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문학 사회학적 접근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도된 창작 계층에 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 다각적인 방향에서 깊이 있는 천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 방법과 접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