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자 복식
저고리:고름으로 맴. 조선후기로 가며 짧고 타이트해졌다.
치마:플레어스커트. 저고리가 짧아지며 원래는 허리에 매던 치마가 위로 올라갔으므로, 치마의 전체 길이는 늘어났다.
두루마기:조선 후기에는 쓰개를 주로 착용해서, 평상복으로서의 두루마기의 사용은 줄어들었다.
大禮) 의식을 거행하고, 후례(後禮)를 마쳐야 결혼식은 사실상 끝난다. 지금은 재래식 결혼은 현재 거의 사라지고, 서양 문화로부터 전파된 신식 결혼식을 진행하고 간단하게 폐백을 올리는 간소화를 꾀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서 지나치게 사치풍조가 만연하여 허례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
大禮) 의식을 거행하고, 후례(後禮)를 마쳐야 결혼식은 사실상 끝난다. 이러한 재래식 결혼은 현재 거의 사라지고 결혼식장이나 교회당 등에서 신식 결혼식을 마치고, 간단하게 폐백 정도만 할 뿐이다. 그러나 신식 결혼식도 근래에 이르러서 지나치게 사치풍조가 만연하여 허례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혼인례 (婚姻禮)
혼인의 의미
1.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의식
2. 대례(大禮),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二姓之合
3. 혼인의 조건
①동성동본(同姓同本)이 아니어야
②16세 이상
③근친의 상중(喪中)이 아니어야
혼인의 의미
● 혼례란 남자와 여자가 혼인해 부부가 되는 의식
혼(婚)이란? 여자에게
大禮), 혹은 대사(大事)라고 불렀다.
즉, 개인주의보다 가족주의(家族主義)를 표방하던 전통사회(傳統社會)에서는 혼례가 가족이라는 새로운 사회집단을 형성하는 의의를 갖기 때문에 혼례를 중시했던 것이다. 또한 혼례에 있어서 혼인에 대한 종래의 전통적인 개념은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조상의 제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혼인의 의식과 절차를 매우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치루었으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의례라고 하여 대례(大禮)라고도 했다. 전통혼례 절차는 중국의 주육례(周六禮)와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사례(四禮)를 참고하고 한국 고래의 습속을 절충한 것이다.
- 주육례(周六禮)
大禮服)이 있고, 상례에는 이에 따른 상복이 있었다. 소례복은 초록색 당의에 화관이나 족두리를 썼으며, 대례복은 다홍색 활옷에 화관을 쓰거나 초록색 원삼에 족두리를 썼다. 저고리는 삼회장저고리이며, 치마는 스란치마 또는 대란치마를 입었는데, 소례복에서는 스란치마를 입었다. 이 때 저고리는
大禮), 후례(後禮)의 순으로 진행했다.
혼례가 보다 체계화되고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며, 일반 서민에게까지 널리 퍼진 것은 조선 말기인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시대부터는 서양의 영향을 받아 일부 계층에서는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전통적인 혼례를 반대하고 이른바 '신식혼
1.결혼의 유래
- 예기의 혼의
중국은 일찍이 서주(西周)시기에 혼인에 관한 엄격한 규정이 있었으며 한 대(漢代)에 와서 대례(大禮)라고 일컫는 비교적 갖추어진 혼인 절차가 형성되었다. 이로부터 이 혼례 전통은 중국 漢 민족의 혼속(婚俗)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예기』
大禮)로서 혼행(婚行)이라고도 하며,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의식이다. 그 절차로는 신랑이 목기러기를 신부집에 바치는 전안례(奠雁禮),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는 교배례(交拜禮), 표주박으로 술을 세 번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合禮)가 있다.
※ 폐백의식
1. 현구고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