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 통일신라 발해 시대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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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 통일신라 발해 시대 문화재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삼국시대
(백제)
1. 익산 미륵사지 (益山 彌勒寺址)
사적 제150호.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소재. 백제 무왕 때 세워진 사찰.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 왕이 왕비와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 금당, 회랑을 세웠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지어져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의 배치는 동·서로 석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으며 탑 뒤에는 부처를 모시는 금당이 각각 자리한다. 이것이 복도(회랑)로 구분되어 매우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바닥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바닥마루의 습기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되어 온돌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토된 유물로는 기와·토기·금속·목재 등 다양하며 글자를 새긴 기와도 많이 발견되었다. 서쪽 금당 앞의 석탑은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목조건축의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였던 것을 새롭게 복원하기위해 해체 중에 있다. 전시관에는 미륵사의 복원된 모형이 있다.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사찰로서 백제가 망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2. 부여 정림사지 (扶餘 定林寺址)
사적 제301호.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었던 절.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는 글이 발견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시대에 백제사찰의 강당위에 다시 건물을 짓고 대장전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림사의 주요 건물 배치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에 이르는 중심축선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건물을 복도로 감싸고 있는 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중문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다.
3.부여 왕흥사지 (扶餘 王興寺址)
사적 제427호.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면 신리 37-2번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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