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 남명 조식과 남명 조식의 제자들

 1  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 남명 조식과 남명 조식의 제자들-1
 2  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 남명 조식과 남명 조식의 제자들-2
 3  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 남명 조식과 남명 조식의 제자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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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방사회와 문화 - 남명 조식과 남명 조식의 제자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남명 조식
(1) 남명 조식의 생애
(2) 남명 조식의 사상
2. 남명 조식의 제자들
(1) 곽재우
(2) 정인홍
(3) 김면
(4) 이대기
본문내용
1. 남명 조식

(1) 남명 조식의 생애
조식은 1501년(연산군7)~1572년(선조)의 사람으로 조선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건중, 호는 남명, 생원안습의 증손으로, 승문원 판교 언형의 아들이다.
26세 이전까지 한양에 거주하였으며 기초학문 학습과 과거를 준비하였고 이후 산해정, 뇌룡정, 산천재 세 시대로 나누어 산해정 시대는 30세에서 45세 때로 생리학에 침잠을 하였고, 뇌룡정 시대는 48세에서 61세로 성리학을 자기화하였으며 산천재 시대는 62세에서 72세로 남명학을 완성한 시기이다. 남명은 현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토동 외가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5,6세 정도까지 자라다 부친이 과거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하게 됨으로써 한양으로 이사를 하여 한양에서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를 보냈으며, 26세 때 부친상을 당해 고양 삼가에서 삼년상을 치른 뒤,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의령 자굴산 명경대 밑의 암자에 들어가 1년 남짓 글을 읽었다. 그러다 처가가 있는 김해로 내려가 약 15년 동안 학문에 깊이 침잠하였다. 그리고 45세 되던 해 모친상을 당하여 역시 삼가에서 삼년상을 치른 뒤 김해로 가지 않고, 삼가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강학하며 약 13년을 보냈으며, 61세 때 다시 현산 청군 시천 면으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2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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