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고려시대 문학의 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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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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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시대 문학의 개괄
-目次-
1. 고려전기 문학
1.1. 창업과 쟁패의 신화적 표현
1.2. 향가의 전통과 그 행방
1.3. 불교 문학의 방향 모색
1.4. 설화와 역사 사이
1.5. 고려전기 귀족 문화의 결산
2. 고려후기 문학
2.1. 무신란, 몽고란과 문학
2.2. 비평의식의 성립
2.3. 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
2.4. 민족사 재인식의 시대
2.5. 사람의 일생 서술방법
2.6. 속악가사와 소악부의 세계
2.7. 설화, 무가, 연극의 양상
2.8. 경기체가, 시조, 가사의 형성
2.9. 사대부문학의 방향과 문제의식
9조. 고려시대문학의 개괄
고려 시대 문학의 특징을 보면 과거 제도의 시행과 교육 기관의 설립으로 한문학은 크게 융성한 반면, 국문학은 위축되었다. 또 전반적으로 한문을 사용하는 상류층의 귀족 문학과, 그렇지 못한 평민 문학으로 분립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귀족 계급에서는 한자를 이용하여, 문학적 내용보다는 교묘한 리듬을 통해 흥취를 돋우는 새로운 시형이 유행하였다. 평민들의 문학인 고려속요는 구전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문자로 정착되었는데 고려문학의 진수로 평가되고 있다.
1.고려전기 문학
1.1.창업과 쟁패의 신화적 표현
신라 시대 말에서 고려 시대로 이행기의 나라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국가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통치력이 약화되고 항거하는 세력이 도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각을 나타냈던 반란세력 지도자들 중에서 견훤과 궁예가 위세를 떨치며 백제와 고구려를 재흥한다고 나섰다. 후삼국시대가 시작되고, 936년에 왕건의 고려에 의한 재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반세기 동안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일수록 질서를 창조하는 역량이 요구되었다. 반란세력의 우두머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문학이나 유학만이 아니고 건국신화 또한 긴요한 구실을 했다.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민중영웅의 전설을 건국신화로 발전시켜 건국의 유래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신화시대는 아니기 때문에 신화적 질서를 내세워도 민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견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네 가지 형태로 전하는데 공통적인 내용은 견훤이 미천한 처지에서 태어난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이중성은 견훤을 영웅으로 부각시키는데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견훤을 주인공으로 한 후백제 건국신화는 미완성이다. 이야기가 단편적인 것들에 그치고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으며 통치이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궁예는 어렸을 적 시련을 투쟁으로 극복하고 승리자가 되었다. 군주가 된 궁예는 이 세상에 내려온 미륵불이라 자처하고 아들을 보살이라고 선전했다. 궁예의 생애 이야기는 고대 건국신화의 전례와 일치한다. 하지만 궁예는 신화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결국 중세의 위기를 고대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안을 완벽하게 마련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왕건은 견훤이나 궁예와는 다르게 6대에 걸친 선조들의 행적은 신화로 이야기 하고 왕권의 투쟁과 승리는 경험적 세계를 서술하는 역사의 소사관으로 삼음으로써, 건국신화의 위광과 합리적 통치의 설득력을 갖추게 되었다.
태조 왕건이 죽은 후에 통일은 불안전하고 왕권은 안정되지 못했다. 지방호족들이 반독립적 통치력을 유지하였으며 호족은 중앙정계에서 대단한 세력을 행사했다. 혜종과 정종을 지나 광종은 호족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시책을 철저하게 밀고나가 6대 성종 때까지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8대 현종이 등극하기까지에 이르는 사건은 왕위쟁탈 궁중비화가 매우 복잡하다. 현종(이름 :순)의 출생부터가 그러하다. 아버지는 왕건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왕건의 손녀인 것이다. 이처럼 고귀한 혈통을 지녔으면서도 비정상적으로 태어나 불운의 주인공이 될 조짐이 보였다. 어머니는 순을 낳고는 바로 죽고, 그의 아버지는 성종의 노여움을 사 귀양 가서 죽었다. 고아가 된 순은 천추태후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노승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결국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현종은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현화사’라는 절을 지으면서 왕실불교, 귀족불교의 아성이 되었다.
고려의 신화는 건국신화로 시작해서 망국신화로 끝이 났다. 정반대가 되는 양쪽 신화에서 왕족의 혈통은 신성하다고 하는 것이 공통된 요소를 이루었다. 신성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자녀들이 부부가 되도록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혈통신화는 고려가 망하지 왕씨를 다 잡아 죽였다고 하는 데까지 연장되고 신성혈통을 없애야 고려의 역사를 완전히 종식시킨다는 생각에서 나온 신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