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귀속 문제에 관한 몇 가지 논쟁의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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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의 귀속 문제에 관한 몇 가지 논쟁의 초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최근 고구려가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가 각 국 학자들에 의해 치열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조선학자(북한)들은 자신들의 논저에서 저희들의 관점을 천명하였는데 1979년에 출판된 『조선전사(朝鮮全史)』에 집대성되어 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 머나먼 원고시대부터 조선반도와 지금의 중국 동북지구에 고대의 조선유형 의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이 고대 조선유형의 사람들이 고조선을 건립하였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에 중국의 연(燕)이 조선의 요동(遼東)을 침입해 점령하였고 기원전 2세기 중국의 한조(漢朝)가 조선반도의 북부를 침입하여 낙랑을 비롯한 군(郡)을 건립하였다. 기원 호, 원고대조선의 고구려인이 흥성하여 낙랑군 및 요동군(遼東郡)의 한인(漢人)세력을 축출하고 고조선이 잃어버렸던 땅을 수복하였다. 당(唐)이 고구려를 멸망시켜 요동(遼東) 및 조선반도 북부를 점령하였다. 그 뒤 신라, 고려, 조선이 점차 반도의 북부를 수복하였고, 동시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이 동북지구를 수복하여 신라와 함께 조선의 남북조를 형성하였다. 지금은 비록 중국과 조선 두 나라가 압록강과 도문강을 경계선으로 하고 있지만, 조선에 귀속되어야 할 지금의 동북지구를 중국이 계속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해야 하는 숙원이 오래 동안 조선 인민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1993년 집안(集安)에서 열린 고구려문화 국제토론회의에서 조선의 박시형 등은 “중국학자들이 국경으로 고구려를 귀속하려 하는데 이는 역사성을 위반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당시 손진기(孫進己)는 “우리는 고구려를 중국의 영토라고 본다. 고구려는 국경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중앙 황조(皇朝)에 예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인의 후예들도 조선족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현재 중국의 각 민족에 속해 있다”고 반박하였다.
그 뒤 한국의 어떤 학자는 “역사상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에 속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지금에 와서 고구려가 중국민족이라고 하니, 이는 황당하고 가소로운 일이다”고 하였다.
사실, 7세기 초 수조(隋朝)의 배구(裵矩)는 “고려(고구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다. 주대(周代)에 와서 기자(箕子)에게 봉했고, 한세(漢世)는 삼군(三郡)으로 나뉘어졌으며, 진세(秦世)에는 료동(遼東)을 통일하였다”고 하였다. 당대(唐代) 온언박(溫彦博)도 “요동 땅은 주대(周代)의 가자국(箕子國)이요, 한대(漢代)의 현토군입니다. 위(魏), 진(晉), 이전까지는 봉역(封域) 안에 가까이 있었으니 (고구려가) 칭신(稱臣)하지 않으려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고 하였고, 요대(遼代) 소손녕(簫遜寧)이 왕씨 고려 사신에게 “너희 나라는 신라이고 고구려는 우리 땅인데 너희 나라가 쳐들어와 점령하였다”고 하였으며, 20세기 40년대 김육불(金毓)도 “이 때의 고려는 그 이전의 고구려이다. 고구려 일족은 본래 부여에서 나와 우리 중화민족의 한 부분이 되었는데, 지금 동북 국경지방에서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그 뒤 손진기(孫進己)의 『동분민족사고(東北民族史稿),』장박천(張博泉) 등의 『동북역대강역사(東北歷代彊域史)』등에서 모두 고구려족은 중국 고대의 한민족이고 고구려국은 중국 고대의 한 지방정권이라고 보았다. 50년대 일부 학자들만 고구려를 조선의 고대국가로 인정하였고 수당이 고구려에 대한 전쟁을 대외침략전쟁으로 인정하였다. 오랜 동안 계속된 논쟁을 통틀어서 매듭지어 보면 고구려 귀속문제에 관한 초점은 아래와 같다.
1. 고구려의 귀속은 어떠한 원칙으로 확정할 것인가?
조선학자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경으로 고구려의 귀속을 확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고구려가 조선에 속한다고 하는 주요근거는 오늘날 조선이 조선반도의 북부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역사상 조선반도 북부가 장기적으로 중국에 귀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살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역사상 일시적인 귀속을 가지고 장기적인 귀속을 부정하였고, 고구려의 일시적인 할거를 가지고 고구려를 중국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국가로 확정하였으며, 고구려가 오랫동안 주로 중국 통일 왕조 정권의 신하가 되어 복종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담기양(譚其) 선생은 일찍이 「옛사람들이 말하는 중국의 범위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역사시기, 몇 천년 동안의 역사 발전을 통해 자연히 형성된 중국을 역사상의 중국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역사상 어떤 한 시기의 귀속이나 오늘날의 귀속만 가지고 판정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몇 천년 동안 내려온 모든 역사시기에 주로 어떻게 귀속하였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구려가 모든 역사시기에 주로 중국에 귀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고구려가 중국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 고구려는 어느 나라 땅에 세워졌는가?
첫 번째 관점 : 조선역사학자의 관점. 『조선전사』는 다음과 같이 본다. 「고구려 국가를 세운 기본 주민은 고대 조선족의 한 가지인 맥족(貊族)으로, 기원전 8세기 고조선 변방인 혼강(渾江) 유역과 압록강(鴨綠江) 중류 일대에 살아왔다.」「일찍이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부터 이 지방에 졸본부여(卒本夫余)가 있었는데 졸본부여는 고조선 옛땅의 한 작은 나라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고구려가 어느 곳에서 건국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이 지방에 수많은 고조선인이 발생한 역사사건으로, 그 당시 고구려는 이미 일찍이 고조선 영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당당한 소국이 되었다.」「고구려는 일찍부터 고조선의 실력 있는 지방정치세력, 즉 후국(候國)이 되었다.」
두 번째 관점 : 고구려는 조선반도 북부에서 건립된 것으로 본다. 주환(朱)이 주편한 『세계중고사(世界中古史)』에서는「기원전 1세기 중엽, 낙랑을 반대하여 투쟁하는 가운데, 고구려가 반도의 북부에 떨쳐 일어났다.」
세 번째 관점 : 고구려는 집안(集安)중심으로 하는 요동과 압록강 유역에 건립되었다고 보지만, 이 지역이 당시 어느 국가에 속해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