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중국과의 관계 고분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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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구려와 중국은 수백 년간 많은 물적 자원이나 인적자원의 활달한 교류가 있었으며, 그것은 두 나라의 문화적 성숙도를 한층 더 성장시키게 되었다. 이렇게 고구려와 중국의 문화에서는 겹치거나 비슷한 부분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부분에서도 고분과 관련된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두 나라의 관련성을 알아보려고 한다.
Ⅱ. 중국과 고구려 고분의 관계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망하기 까지 동아시아에서 독창적이고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고구려는 그전에도 자잘한 침략이 있었겠지만 244년의 동천왕(東川王) 때 위(魏)나라의 침략에서부터 668년에 당(唐)나라와의 평양성 전투까지 끊임없이 중원(中原)의 침략을 받았다. 기나긴 세월동안 정복한 중국영토의 문화를 자연스레 흡수하거나 혹은 상인이나 물자가 끊임없이 오고 가면서, 두 나라 모두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다. 특히 중국에서 3~4세기경 동한(東漢)이 망하고 삼국지로 유명한 위(魏) 촉(蜀) 오(吳) 시대와 그 뒤를 잇는 진(晉)나라를 겪으면서 많은 지식인들과 문화인들이 전란을 피해 고구려로 넘어온 것이 그 예로 들 수 있다. 한편 고구려는 태조왕(太祖王)이래로 높은 수준의 정치적 안정성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인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 대표적인 문화가 고분(古墳)으로 대표되는 장의문화(葬儀文化)인 것이다. 윤경해,「高句麗古墳璧畵의 繪畵性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p.10.
장의 문화의 대표적인 문화인 고분은 대체적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지만 그 발상지는 흔히들 중국이라고 알고 있으며, 고분벽화의 경우 여지없이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중국의 중원세력에 확대가 이루어짐에 따라 환인(桓仁) 현 중국의 동북지역으로써 평안도와 인접한 지역.
과 주변지역에 확산 되었다. 이 지역은 중국과 고구려가 세력다툼이 치열하게 이루어지면서 뺏고 빼앗기는 역사가 반복되었는데, 그렇게 수많은 세월동안 두 나라의 문화적 요소가 수없이 섞이는 와중에 환인지역, 특히 고구려만의 독특한 고분문화가 완성이 되어 갔다.
특히 「삼국사기」등 에 기록된 6세기의 상황을 보면 고구려도 고구려 나름대로 중국으로부터 발전된 장의 문화를 들이려 하며 중국 측도 고구려 특유의 장의문화에 관심을 보이는 대목이 군데군데 눈이 띈다. 안휘준, 『한국 고분벽화 연구』, 사회평론, 2013, p.32.
그뿐만이 아니라 비록 초창기에 한정되지만 중국 측에서 자신들의 강성함이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생활상을 벽화에 그려넣자 고구려 측에서도 따라서 넣었다는 일례도 존재한다. 이렇게 두 나라는 서로가 경쟁을 하면서 각 두 나라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다.
Ⅲ. 중국과 고구려 고분의 공통점과 차이점
참고문헌
참고문헌
김일권,「고구려 고분벽화의 天文思想 특징 : ‘三重 天文 方位 標指 體系’를 중심으로」, 고구려발해학회, 1997.
안휘준, 『한국 고분벽화 연구』, 사회평론, 2013
윤경해,「高句麗古墳璧畵의 繪畵性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전호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풀빛, 2002.
최영주, 「高句麗 古墳壁畵 四神圖에 나타난 象徵性 硏究」,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황용순, 「고구려 고분벽화와 중국 고분벽화와의 관계」, 선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