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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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는 여러 종류의 글자가 쓰이고 있지만, 이러한 여러 글자 가운데에서 한글은 만든 목적이 뚜렷하고 만든 사람이 분명한 글자의 하나다. 또 새로 만든 글자에 대한 해설책도 편찬되었다. 이러한 예는 매우 드문 일로서, 새 글자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친히 만드셨고, 이를 만든 목적이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예의편(例義篇) 첫머리와 정인지(鄭麟趾)의 서문(序文), 그리고 신숙주(申叔舟)의 문집(文集)인 보한재집(保閒齋集) 등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訓民正音 解例本 例義篇) 첫머리에서 세종대왕은 다음 과 같이 말씀하였다. 우리말의 음운체계(音韻體系)가 중국(中國)과 달라서 본디 중국어(中國語)를 기록 하도록 마련된 한자(漢字)로는 통하지 않으므로 한자를 모르는 백성(百姓)들이 하 고자 하는 말을 글로 표현하려고 하여도, 끝내 자기 뜻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서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기에 편안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서문에서는 한자를 모르더라도 자기 뜻을 글로 옮겨서 나타낼 수 있도록 쉬운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훈민정음은 누구의 작품인가?
우리는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현재 대부분의 책이나 교과서에는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상식은 정확한 것일까? 한글 창제 당시의 기록으로는 그런 증거가 하나도 없다.
실록을 보면 “이달 임금이 직접 언문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다..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이른다"라고 적혀있다. 한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443년,세종 25년의 일이다. 실록에는 이것에 대해, 매우 간략한 기록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창제는 당시 큰 혁명이었다. 즉 그 당시 원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들이 세종에게 반대상소를 올리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가 그릇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문화사대주의를 생각하면 중국의 힘을 의식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의 행동에서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가 세종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집현전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한글 창제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자는 정인지, 최항, 신숙주, 성삼문 등 모두 일곱 사람이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의하면 세종이 신숙주, 성삼문에게 명해 언문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가장주목 받는 신숙주를 보면 그가 중국에 갔다온 것이 사실이고 외국어에도 능통했지만 그가 쓴 보한제집에서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세종이라 언급하고 있고 또 그가 요동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 시기가 1447년 1월으로 훈민정음이 이미 만들어진 후에 방문한 것이요, 또 그 목적이 훈민정음창제와 관련된 것이 아니고 세종의 명을 받아 한자음을 바로 잡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훈민정음 창제에 집현전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원로학자들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는 것도 몰랐고 이것이 만들어지자 오히려 이를 반대했으며 젊은 학자들도 서적편찬에만 관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가장 오래 전하는 것이 혜례본인데 이것은 훈민정음 반포를 위해 집현전학자들이 쓴 것이다. 이들을 살펴보면
정인지(鄭麟趾)는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의 서문(序文)에서 지리적 조건(地理的 條件)이 다르면 이에 따라서 사람들의 발음(發音)도 달라진다. 그런데, 옛날 중국 사람이 만든 한자를 후세(後世) 사람들이 마음대로 바 꿀 수 없다고 해서 중국 이외(中國 以外)의 나라에서 한자를 빌어 쓰고 있으나 제대로 의사소통(意思疏通)이 될 이치(理致)가 없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자와 한문을 쓰고 있으나 한문책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 뜻을 깨우치기 어려워하고 죄인(罪人)을 다스리는 데도 한문으로 쓰기 때문에 죄인이 진술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신라(新羅) 때부터 관청(官廳)과 민간(民間)에서 써 오고 있는 이두(吏讀)가 불편하고 실지 언어생활(言語生活)에서는 제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세종께서 한글 28자를 만드셨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한글은 배우기 쉬워서 하루 아침이나 열흘이면 익힐 수 있다. 겨우 28자이지만 얼마라도 응용이 가능하다. 한글이 창제되어 어려운 한문책의 뜻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한자음(漢字音)도 분명해졌고, 음악(音樂)도 음계(音階)가 고르게 되었으며, 바람 부는 소리나 닭울음소리도 다 적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