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과 영화 마지막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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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국 소설과 영화 마지막 리포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번 영국소설과 영화의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영화와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마지막 리포트로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골라보았다.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의 좋은 작품들을 보면 알다시피 제인 오스틴의 영화는 매우 훌륭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손에 그려진 맨스필드라는 작품의 영화와 원작을 살표보면 이렇다.
-Mansfield Park (맨스필드)
우선 맨스필드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가난한 집안의 딸 패니 프라이스가 부유한 이모네에서 자라게 되면서 내면적 가치를 착실하게 키우게 되어 종국엔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해온 남자와 그 가족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각 사람들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한 지류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과 영화판과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 주인공 ‘패니의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의 패니는 비록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부유한 이모네 집에 더부살이하게 된, 그리고 그 때문에 가뜩이나 타고난 소극적이고 얌전한 성품이 더욱 더 내향적으로 된 그런 여자아이라 볼 수 있다. 버트램경의 권위적 태고나 레이디 버트램의 무심함, 노리스 이모의 구박, 거기에 더불어 노리스 이모의 일방적인 압박 등으로 과대평가된 버트램과 아가씨들과의 비교로 인해 패니는 마치 거대한 거목들 사이에서 받아야 할 햇볕에 빼앗긴 작은 뿌리처럼 비실거린다. 심지어 그녀는 신체적으로도 남들처럼 건강하지도 못한 여자아이인 것이다.
이에 반해 영화에서는 비록 친척집에 더부살이하게 된 패니이지만, 훨씬 똑 부러지고 당당한 성격과 건강한 신체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거기다가 그녀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고양’을 넘어서서 기존의 지식에 도전장을 던질 정도로 진보적인 여성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아마 영화판의 패니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혹은 그와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부유함 및 그 기반의 경제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경제적 여유로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바른 품성을 갖추는 것, 즉 ‘교양’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언급되곤 한다. 노리스 이모 역시 패니를 직접 만나보기도 전에 그 아이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해 교양이 없을 것을 먼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떤 면에서는 계급에 따른 결과를 타고난 품성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즉 버트램가의 딸들인 마리아와 줄리아는 잘 교육을 받았으며 따라서 패니와 같은 아이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우아함과 지성 그리고 교양 등을 갖추고 있다는 논리를 펼치는 모습 말이다.
이에 대해 제인 오스틴은 교양과 품성을 분리해서 보는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교양은 교육으로 얻을 수 있어도 품성은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랄까, 마리아와 줄리아의 경우 분명 패니보다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남자와 도망가버리는 최악의 사건을 저질러버린다는 점에서 ‘바른 품성’의 소유자가 아닌 것이다. 아마 패니를 진저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던 헨리 크리포드의 결말이 그런 식으로 난 것도 헨리 크로포드의 품성 자체가 옳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메리 크로포드 여기 미모와 매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바른 품성을 갖지 못했기에 에드먼드와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메리와 비교할 때 패니는 ‘보이지 않게 모두를 배려하는 마음씨’를 통해 사랑과 성공을 쟁취하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혹은 시대적인 이상적 여성상을 어렴풋이나마 엿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와 원작의 또 다른 차이점은 장남 톰에 대한 묘사이다. 원작을 보면 장남의 망나니 기질은 그의 ‘장남’이라는 지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부모의 유산 및 지위가 장남에게 상속되는 것이 법이었기 때문에 부유한 집안의 장남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아마도 조건이었다면 당시 많은 장남들이 톰 못지않게 흥청망청 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매년
수입이 보장되어 있고 거기에 지위도 상속받는데, 무슨 걱정이 있고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심지어 여성들도 그러한 장남의 조건을 선호하고 다려드니, 정말 심신 편안한 조건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에 반해 영화에서는 톰이 아버지 버트램경의 노예 경영에 반해서 반항을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당시 자메이카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버트램경이 거기서 노예들을 학대하는 것을 톰이 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지만, 역으로 이 부분이 있었기에 원작이 쓰여질 당시의 영국의 사회상을 조금 엿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원작에서는 노예 문제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 안티구아에서 버트램경이 사업을 한다는 사실 외에는 패니나 톰이 노예 문제를 가지고 문제 삼는 부분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제인 오스틴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