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지 생활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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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현지 생활을 하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처음 발을 디딘 中國의 모습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분명 공항인데 江陵의 시외버스터미널마냥 작은 건물이 전부, 면세점 따윈 보이지 않았다. 건물도 매우 낡았고 비행기의 시끄러운 소음에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유리창들. 이게 공항이 맞냐며 쑥덕대다 간단한 출국심사를 거치고 나오니 양교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첫인상은 매우 깐깐한 여자 기숙사 사감선생님? 입을 여신 교수님의 입에서는 약간은 서툰 한국어가 나와 짐을 옮기고 차에 오르면서 첫인상에 대한 생각은 금세 잊혀졌다. 여권으로 인한 약간의 소동을 뒤로 한 채, 버스에 짐을 싣고 長江大學으로 출발했다. 피곤에 절어 있었던 우린 中國의 도착했다는 흥분도 잊고 금새 잠이 들었다. 자다 깨다 몇 번 반복하니 荊州 시내란 곳에 도착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에 입이 딱 벌어졌다. 시골이란 말을 듣고 약간의 예상은 했었지만 과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건물에는 사람들이 밥도 먹고, 빨래도 널고, 그러면서 살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長江大學이란 곳도, 이렇게 낡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 정도 눈에 익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밖의 다른 건물들보다는 높고 비교적 정갈한 모습에 안정했던 것 같다.
기숙사도 안 좋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깔끔하고 정리가 잘되어있어서 안심을 했다. 長江大學에서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해 주었고, 후에는 학교 근처 슈퍼에서 청소용품들을 사서 방을 청소하고 中國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오전10시에 교실에 모여 한 시간 반 가량을 수업을 듣고 실전에서 직접 경험을 해보는 활동을 했다. 우리가 韓國에서 외국인들을 보면 금새 ‘아! 저 사람은 외국인이구나!’라고 생각하듯이 여기 현지인들도 그걸 아는지 많이 쳐다보았다. 韓國에서는 외국인이 지나가면 먼저 말을 걸어올까, 혹은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서 흘끔 보고 지나치는 반면에 中國사람들은 외국인이 많지 않은 것인지 우리가 단체로 지나가기라도 하면 정말 민망할 정도로 많이 쳐다보았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으나 나중에는 금새 적응해 그런 사람들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적응 수업을 하며 은행에서 은행카드도 만들고 월마트가 있는 시내로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직접 버스를 타고 찾아가기도 했다. 이런 수업들을 하는 도중에는 처음 온 中國이기도 했고, 실전은 처음이라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의지만 해왔다. 하지만 수업을 며칠 해본 후, 혼자 연습도 하면서 조금씩 용기가 나서 먼저 현지인들에게 다가가 길도 묻게 되었고, 낮에는 혼자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보기도 하면서 중국어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이 서툴러도 단어를 잘 조합하여 말하면 중국인들은 의미를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었고, 틀린 말을 하면 바로 고쳐주거나 하면서 많이 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들을 소개받는 날이 다가왔다. 교실에 모여 약간의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기다리고 있었더니 약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양교수님은 문화원의 학생들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셨다.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누가 될까 남은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중 露라는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나와서 자기소개를 했다. 귀여운 얼굴과는 달리 파워 풀하고 큰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학생은 (양)교수님의 추천으로 나의 가 되었고, 서툰 중국어로 내 소개를 하자 예상보다는 잘 소개를 했는지 중국어 실력이 나쁘지 않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자기소개는 학기시작과 동시에 항상 하던 것이라 그런지 입에 벤 말이었기에 아니라면서 열심히 하고 싶은 말을 사전을 이용해 말을 했다. 露는 내가 못 알아 들을 때는 한번 더 말을 해주고 그래도 못 알아 들을 경우에는 꽤 잘하는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내 영어듣기 실력이 나쁘진 않았기에 그나마 의사소통이 잘 됐던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서로의 기숙사를 구경하고 난 후, 아쉬운 첫만남을 뒤로 한 채, 우리의 휴대폰을 구입하는 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강한 첫인상처럼 휴대폰을 사는 날에도 露는 반장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기저기 알아봐주었고, 그 덕에 우리는 단체로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고생해 준 것이 고마워 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자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여 한 식당에 가게 되었다. 나는 아직 음식에 적응을 못해 露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먼저 나오게 됐었는데, 그 때 露가 너무 걱정을 해서 아직까지도 미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 후에도 仲秋節 휴일에 만나서 같이 탁구를 치기도 하고, 나는 中國 문화에 익숙지 못해 교환 하지는 못했지만, 仲秋節이라며 月餠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 말을 더듬게 되는 나는 고마운 마음에도 라는 간단한 말도 못하고, 온갖 바디랭귀지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버리고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타지에서 온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매우 감동을 했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하는 내 성격을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中國에 온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꾸준히 연락을 잘 하고 지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들을 보면 교수님이 잘 배정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中國친구들과 휴대폰도 만들어서, 가흥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서로 보고 싶다며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다 되었을 뿐인데 벌써 이러면 어쩌냐며 다그치기도 했었지만, 보고 싶은 건 사실이었기에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를 떨듯이 꽤 긴 통화를 했었다. 가흥과 長江이 어떤 점이 다른지도 알게 되었고, 서로 잘해내자며 격려하기도 했다. 를 소개 받고 나서는 자주 휴대폰으로 연락하게 되면서 中國의 휴대폰에도 금새 적응했다.
솔직히 나는 中國語보다는 日本語를 더 오래 공부해 왔고, 日本文化를 먼저 알고 적응을 했기 때문인지, 아직 中國文化에 익숙지 못하다. 그래서 같은 취미나 흥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하는 생각을 늘 해왔기에 들에게 日本語를 전공으로 하는 친구가 있다면 소개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두 명을 소개를 받게 되었는데, 한 명은 日語英文學科 2학년이고 공부한지 2년이 되었다고 했다. 英語는 잘 못하지만, 日本語는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여서, 괜찮았다. 와 함께 만났는데,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지 말 수도 적었고, 헤어질 때쯤 외국 학생들이 하는 스터디 그룹 같은 모임이 있으니, 원하면 자신과 함께 가자는 말을 했었다. 美國人, 日本人 등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는 소리에 어쩌면 英語로 대화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찬스라고 여겨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國慶節이 지나고 나서 가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또 다른 한 명은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휴대폰으로 서로 연락을 하는 사이인데, 日本語보다는 英語를 더 잘하는 아이였다. 中國에 와서 느낀 것인데, 中國대학생들은 우리나라처럼 12년을 필수로 英語를 하는 것이 아닌데도 英語 회화실력이 매우 좋았다. 발음이 좋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어휘 구사력이 현재진행으로 英語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보다도 더 좋았고, 외국인을 대하는 데에 약간의 부끄러움 빼고는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배제를 하거나 그런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中國에서도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라서 속으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절대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中國에 온지 일주일이 지나던 날, 드디어 첫 수업을 하게 되었다. 中國에서의 수업은 처음이기에 韓國에서 첫 강의와 뭐가 다를까 궁금해 하며 수업을 나갔는데, 韓國처럼 첫 수업이라고 오리엔테이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소개를 하거나, 수업 진도를 나갔다. 처음 들은 수업은 재미있었고, 中國語로만 수업을 해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설명도 쉽게 해주시고, 못 알아 들을 경우에는 천천히 다시 설명을 해주셔서 韓國에서 듣던 원어민 교수님 수업보다도 훨씬 흥미가 생기는 수업이었다. 수업은 총 4가지이고, 일주일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을 듣고 있는데, HSK 力 수업을 제외하고 지루하다고 느낀 수업은 아직까지 없다. HSK 力 수업은 시험대비 수업이라 그런지 들으면 들을수록 안 들리고, 교수님도 어려워하는 우리가 답답하셨는지 원래의 교재가 아닌 다른 자료를 이용하여 우리의 귀를 트이게 하려 많이 도와주신다. 다른 수업 두 개는 교수님들이 매우 열정적이어서 수업 내내 교수님과 칠판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수업이고, 발음도 하나하나 고쳐주셔서 좋은 것 같다. 교수님 수업은 수업인데, 매 수업마다 과제를 내주시고 다음 수업에 숙제를 발표하면서 틀린 것을 고치는 방식이 꽤 많이 쓰인다. 내 생각에는 책을 보며 문제만 풀어가는 수업보다 발표하고 틀린 것을 고치거나, 내용을 보충해 가는 방식의 수업이 더 좋다고 생각돼서 교수님의 수업이 제일 흥미가 있고 집중하게 된다. 교수님은 우리의 담당 교수님이라 그런지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불편한 점이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신다. 仲秋節에는 교수님 댁에 초대받아 명절을 지내러 갔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명절을 지내는 것처럼 즐겁고 따뜻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때였다.
長江에 함께 온 사람들은 거의가 오기 전에는 인사만 하던 사이였는데, 한 달 가량 같이 살면서 많이 친해졌고, 교수님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진다.
中國에 와서 처음 며칠 동안 금새 여기 생활에 익숙해져서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거나 모양이 이상한 음식들을 빼고는 아주 잘 먹었고, 길을 지나다니면서도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길이 아닌 곳은 잘 다닐 수 있었다. 한번은 火를 먹으러 갔었는데 우리나라 샤브샤브처럼 여러 종류의 야채나 고기들을 육수에 넣어 익혀 먹는 것이었다. 처음 먹는 음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맛있게 먹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이렇게 금새 이곳의 생활에 적응했지만, 역시나 집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는지, 가족들과 인터넷으로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많이 그리웠다. 제일 집이 생각나고 힘들었던 때는 이곳에 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