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관련있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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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판소리와 관련있는 예술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판소리와 관련 있는 소설작품을 알아보고 그 효과를 분석해보자.
1.판소리계 소설의 종류와 저자의 의도와 주제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 사설과 판소리계 소설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별로 보이지 않으며 부분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판소리계 소설로는 , , , , , , , , 등이 있다.
판소리계 소설은 세속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서 민중의 발랄성과 진취성을 기반으로 한 민중의 공동작이다. 다시 말하면 적층되어 오는 과정에 민중의 참여에 의해 끊임없이 개작되고 또 민중의 체험이 투영되어 온 것이다.
1) 춘향전
이 작품은 판소리계 소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래도록 사랑을 받아왔다. 사설에서 소설로 정착되고 나서 사본 30종 목판본 7종 활자본 50-60종이 남아있어 이본을 챙겨보기도 어렵다. 춘향전은 남원을 무대로 펼져지고 구체적으로 그 작품속의 광한루나 오작교가 아직도 남아있어 지방민들중에는 이를 사실담으로 여기기도하나 설화에서 유래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춘향은 기생으로 개인의 영달과 신분상승에 성공한 운좋은 여인으로 결말이 나지만 신분간 경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이런 전개는 현실적으로 맞지았다. 여염집 여인도 아닌 기생의 딸이 파격적으로 양반의 정실부인으로 오를 수 있었던 뒤에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소설을 통해서나마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민중이 바람에 힘입은 것이다. 신분간의 장벽을 넣어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고자하는 민중의 욕구는 파격적인 전개까지 개의치않을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파격적인만큼 이를 상쇄하기 위한 배려가 또한 갖추어져 있음을 흘려서는 아니된다. 어느 인물보다 춘향은 가장 눈여겨보아야 대상이다. 춘향은 천한 집안에서 아비없이 자란 아이답지않게 정신적으로 성숙된 면모를 보인다. 기생이라면 그의 어머니가 생각하듯 이저것 가리지 않고 호의호식할수 있다면 어느 자리나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처신하는게 보통이었을터인데 그녀는 이도령과의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춘향의 지고한 사랑만으로 변사또의 폭압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춘향이 독한 마음으로 변사또에게 저항할때 이도령은 현실적으로 춘향을 구할 방도를 찾았고 그래서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왔다. 양반의 신분에 있으면서 그에 연연하지 않고 굴레를 벗어던지고 사랑을 택했다는 점에서 이도령은 근대적 사고의 소유자라 할수 있다. 이렇게 두 사람사이에 맺어진 믿음과 사랑은 독자에게 변사또가 춘향에게 어떤 폭압으로 누르든 기필코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다. 이미 예정된 것이기는 하나 변사또는 결말부위에서 일시에 그 위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바로전까지 전형적인 탐관오리로서 민중의 힘을 업은 춘향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던 변사또는 이도령이 출현하자마자 줄행랑을 치기에 바빴다. 이 대목에서 춘향과 이도령보다 더 기뻐하며 함성을 지른 무리는 춘향의 뒤에서 그녀에게 정신적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숱한 민중들이었다. 춘향은 모든 시련을 딛고 일어서 억눌린 민중에게 카타르시스와 희망을 보여준 여성영웅과 같은 존재이다. 밖에 비친 주제는 춘향의 정절이라 하겠으나 환경과 신분을 넘는 남녀간의 지고한 사랑도 그에 못지않은 주제라 하겠다.
2) 흥부전
단순하게 보면 흥부전은 형제간의 의리와 그 갈등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야기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살필때 조선후기 사회상과 평민의식을 잘 드러내는데 더 큰 뜻이 있었던 것같다. 특히 흥부전은 동요하는 조선후기 사회상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여러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조선후기는 이앙법과 광작의 영향으로 농민중에서도 부를 누리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무역과 장사로 대도시 주변에 부유한 상공업자들이 급격히 늘어가던 시기였다. 이시기의 졸부의 한 전형으로 나선 인물이 놀부이다. 그는 흥부와 여러면에서 달랐다. 흥부가 양반의식을 지니고 가난한 살림에도 예의와 염치를 소중히 하는데 비해 노비출신인 놀부는 시세에 맞춰 영리하게 재산을 불려나갔다. 그의 그런 적응력은 나무라기는 커녕 다른 여러 사람이 본받아야할 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유산을 혼자 가로채는가하면 아이가 12명이나 딸린 아우 흥부가 굶주림에 지쳐 구걸하러오자 뭇매질하여 내쫓는 포악함을 보인다. 그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로 결코 관대함이나 인정을 베푼적이 없었다. 형제간이지만 흥부는 당시 가난과 고초에 허덕이지만 나날을 고통으로 이어가던 민중 대부분의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반대로 놀부는 고리대금업자 지주 혹은 악랄한 상공업자로 평민의 피를 빨고 있는 졸부를 상징한다고 보아 좋을 것이다. 민중들은 흥부를 동정했고 놀부를 응징하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나 그 방법을 현실안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신화가 없어진 시대에 그런 이야기 전개방식을 좇게 되었고 제비와 박을 통해 현실적으로 처리하기 힘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였다. 유치한 발상이기는 하나 제비와 박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고마운 존재이다.
실제 악덕 지주와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림을 당하기가 일쑤였던 조선후기 민중들에게는 이야기의 논리적 진행이란 하찮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악을 퇴치하고 선이 잘 되는 쪽으로 결말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향촌에서 그런 악인을 없애 경제적 배분이 잘 이루어지고 보다 화목한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바랐다. 이렇게 볼때 우리가 알고 있는 형제간의 우애는 표면적 주제일 뿐 수탈과 착취, 그리고 복종과 희생으로 나누어지는 그 두 계층을 통해 경제문제와 당대 현실을 꼼꼼하게 보여주는데 더 큰 뜻이 있었다하겠다.
3) 심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