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감상론 -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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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미술감상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 무한정 자료 찾아서 올리기
style.visibility작가소개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Pablo Ruiz Picasso) 화가 출생-사망1881년 10월 25일 (스페인) - 1973년 4월 8일
학력-마드리드국립미술학교경력1944 프랑스공산당 입당
1936 에스파냐내란 때 인민전선 지지
1925 제1회 쉬르레알리슴전 참가
1912 종합적 입체파 운동
스페인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생애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이다. 피카소가 영향을 받은 인물로는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의 거장들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1907년 피카소가 선보인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라는 작품은 본격적인 입체파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92살에 생을 마감 할만 큼 굉장히 장수를 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파블로 피카소는 많은 미술작품을 남겼고 그림뿐만 아니라 도예나 조각 작품 활동도 하였다. 이렇게 대단한 파블로 피카소도 처음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본 대다수의 미술가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형편없는 그림이라고 비아냥거렸고 피카소의 무조건적인 지지자였던 기욤아폴리네르마저 결국엔 그의 그림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직 한 친구 칸바일러라는 친구만이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도 자신이 초대한 친구들의 반응이 좋지 못하자 피카소의 그림을 집 안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 그림이 바로 파블로피카소의 유명한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입체주의
20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을 말한다. 처음에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의 화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대상을 원뿔이나 원통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해석해 캔버스에 평면적으로 재구성했다. ‘입체파’라고도 한다.
피카소와 작품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 개로 나눌 것 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1905년 피카소는 이른바 장밋빛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의 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졌지만, 오늘날 그것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니라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2년의 기간 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가 많은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늙은 기타수
피카소의 이 시기가 그레코에 심취하던 때였다. 굶주리고 버림받은 사람에게는 성자의 그늘이 있다. 왼쪽 어깨를 강조한 것은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라, 피카소의 청색 시대 인체는 메마를 대로 메마르고 손가락도 뼈만이 앙상하다. 이 손으로 기타를 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타는 노인의 신체의 일부처럼 달라붙어 있다. 노인은 장님이다. 그를 둘러싼 세계와는 이미 창문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이 밀폐된 상태의 사나이의 조형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다.
소의 두개골
피카소는 1946년 12월 이렇게 말했다. 밤의 빛의 효과는 매우 매력적이다. 자연 광선보다는 더 좋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서도 밤에 한 번 찾아와 주기 바란다. 대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광선, 내 그림을 둘러싸고, 뒤 벽에 비치는 깊은 그늘, 이 빛을 당신은 내가 거의 밤에 제작하는 정물화에서 발견할 것이다. "전쟁 중에 피카소는 인간이나 두개골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한 점이다. 또 4월 16일에는 피가 흐르는 두개골, 새하얗게 바랜 염소의 두개골을 흑백의 단순한 구성으로 제작하였다. 흑과 백, 낮에 대한 밤, 폭력에는 결코 굴할 수 없는 피카소의 저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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