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서 -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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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서…
작가소개
레오나르도 다빈치
원어 Leonardo da Vinci
출생~사망 1452.4.15 ~ 1519.5.2
출생지 : 이탈리아 엔포리 근교 빈치
사망지 :프랑스의 앙보아즈 근교 그루 성관
국적 : 이탈리아
직업 : 화가, 과학자, 발명가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화가, 과학자. 엔포리 근교 빈치에서 출생, 프랑스의 앙부아즈에서 사망. 공증인의 서자이며 14세경 피렌체의 베로키오 공방에 들어가서, 20세까지 그곳 화가조합에 가입하나, 계속 스승의 공방에 있었으며 독립한 것은 1479년경. 현존하는 최초기의 작품 『그리스도 세례』(스승 베로키오와 공동작. 1427~1473년경, 우피치 미술관)와 『수태고지』(1473년경)는 그가 일찍부터 투철한 자연관찰에 의한 엄격한 사실주의를 습득하고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지네브라 데 벤치』(1476년 경,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와 『부노와의 성모』(1478년경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는 키아로스크와 스푸마토의 기법이 보이며, 『마기의 예배』(1481 우피치 미술관)와 『성 제롬』(1482년경, 바티칸 미술관)에서는 그 엄격한 사실에 깊은 정신성을 가미하여 15세기 회화를 완전히 벗어났다.
1482년경에 밀라노로 이주, 스포르차 가문의 루도비코 모로(Ludovico il Moro, 1451~1508) 밑에 있으면서 『암굴의 성모』(1483~1486년경, 루브르 박물관), 산타 마리아 델 그라체 수도원의 『최후의 만찬』 벽화(1495~1498), 『성 안나』 화고(畵稿, 1498 런던 내셔널 갤러리), 대성당 교차부 돔의 모델 제작, 스포르차 성내의 사라 델 앗세의 장식, 빛과 그림의 연구, 『회화론』 등의 저술 등 그때까지 축적된 모든 기량을 발휘하였다. 1499년 프랑스군의 밀라노 점령으로 그곳을 떠나 만토바에 가서 공비(公妃) 이사벨 데스테의 초상(1499, 루브르 박물관)을 소묘하고, 베네치아, 볼로냐를 거쳐 1500년 봄 피렌체에 귀환함. 다음해 『성 안나』 화고(상실)를 공개하였으나 1502년 체자레 보르지아 Cesare Borgia, 1475(1476)~1507 의 군사 토목기사로서 종군했다. 다음해 봄 귀향하여, 피렌체 정청. 『모나리자』(1503~1506, 루브르 박물관)를 그림. 1506년 밀라노를 다시 방문, 『암굴의 성모』 제2작(런던 내셔널 갤러리)을 지휘, 제작하고 『성 안나』(1510~1511, 루브르 박물관), 『세례자 요한』(1512~1513년경) 등 저명한 자서전 데생(1510년경, 토리노 구왕립도서관)을 그리며 그외에 각종 과학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성 안나』는 양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의 정수를 나타내고 있다.
1513년 초 로마에 갔다가 그해 가을,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 앙부아즈의 클로 뤼세 저택에서 많은 수고(手稿)의 정리, 미완화의 손질 및 샹보르 성관 등의 설계에 종사하며 생애를 마쳤다. 거의 모든 분야에 나타난 그 알뜰한 진리 탐구와 업적은 그 시대에 나타난 최고의 만능인, 최고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미술가로서의 위대함은 엄밀정치한 자연탐구에서부터, 자연과 인간내부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 발견하고 찾아낸 것을 보편적으로 시각화하여, 거기에 다시 우주적 생명의 신비와 영묘(靈妙)까지도 작품에 주입하고 있는 점이다. 그 심연(深淵)에서의 장중한 작풍은 타에 유례가 없다. 매우 과작(寡作)임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최대의 거장으로 손꼽히며, 동시대 및 후대에 준 영향이 매우 크다.
다빈치의 일화
(스승을 놀라게 한 어린 레오나르도의 재능)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레오나르도는 피렌체로 갔다. 그곳에서 아버지 세르 피에르는 어렸을 적부터 데생에 소질을 보이던 아들 레오나르도를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라는 화가의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여보냈다.어린 레오나르도는 다른 견습생들과 마찬가지로 바닥 청소나 잔심부름 같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붓을 닦고 안료를 빻는 일 등을 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을 배웠다. 레오나르도는 열심히 그림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승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물론 레오나르도가 스승과 동등하게 짝을 이뤄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스승이 그리다 만 그림의 귀퉁이에 천사들을 그려 넣었다. 제자의 솜씨는 스승을 놀라게 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스승은 나이 어린 제자가 자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날 이후로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훗날 레오나르도는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무능하다”라고 말했다.
다빈치의 일화(2)
레오나르도는 채식주의자였다. 부유층들이 기름진 음식과 진수성찬을 즐겨 먹던 그 시절, 그는 샐러드, 과일, 채소, 면 등을 즐겨 먹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쌀과 야채로 걸쭉하게 만든 수프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만의 건강관리 규칙을 쪽지 종이에 적어 놓기도 했다. “식탁을 떠나자마자 서 있고, 점심을 먹은 뒤에 바로 잠들지 마라. 술은 절제할 것이며, 자주 마시되 적게 마시고……화장실에 가는 일을 미루지 말라……”
1519년 4월 23일, 레오나르도는 살라이에게 포도밭의 절반을 주겠다는 내용 등이 담긴 유언장을 작성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이에게 돌아갈 몫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5월 2일, 그는 예순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엄청난 분량의 쪽지 종이를 남겼으면서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탄하던 그는 어쩌면 ‘지나치게’ 천재적인 인물의 전형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그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 공방시절 스승 베로키오와 함께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부분은 왼쪽하단의 천사들인데, 얼굴 묘사 부분이 뛰어나며,전체 그림에서도 다소 두드러지게 보인다.
레오나르도는 다빈치는 이그림을 그리면서 혁신적인 기법을 도입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화다.
유화는 피렌체 외 지역에서는 2~3년 전부터 쓰이기시작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많은 천재가 그런 것 처럼 새로운 기법을 빠르게 도입했던거다.
유화는 템페라화에 비해서 더 다양한 색채와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다.
결국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사 그림은 그 그림솜씨도 뛰어났지만,기법에서도 사용재료에서도 혁신적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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