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자본주의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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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의와 자본주의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우리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일반적 통념으로 본다면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말한다. 정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 이지 규범이다. 이러한 정의가 깨진다면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개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의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현대인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품고 살아가지만 그들의 정의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쫓기에 급급한 형상을 띄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쫓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타인과 끊임없이 경쟁하게 되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해야 했다. 그리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남들보다 돈을 악차같이 모으는 악순환을 계속 반복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돈은 일 순위가 된지 오래였고 정의의 개념 또한 변했다. 그 속에서 인간은 돈보다도 못한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미 정의 실현의 문제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실종되어 버린 정의를 되찾아 반드시 실현시켜야한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유지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뒤렌마트의 희곡 은 우리에게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되찾고, 실현시켜야 할 정의의 문제를 뒤렌마트는 자신의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뒤렌마트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 생각하며, 돈의 위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을 통해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희곡의 배경인 귈렌은 과거의 영광을 품은 채로 황폐해진 도시다. 마을 주민들은 한때는 풍요로웠던 도시를 기억하며 가난 하지만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귈렌은 중부유럽의 작은 도시라 볼 수 있다. 뒤렌마트는 희극의 배경을 구체화시킴으로서 현실성을 부여하고 객관화 시켰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비판적인 사고를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은 노부인이 된 차하나시안이 자신의 고향인 귈렌시를 방문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노부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시장 후보인 ‘일’을 살해하면 귈렌시를 위해서 10억을 주겠다고 한다. 차하나시안과 일은 과거에 함께 미래는 꿈꾸는 사이었으나 일의 권력과 돈에 눈먼 배신으로 인해 차하나시안은 버림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마을에서 쫓겨나 정처 없이 미망인으로 떠돌다 미국의 대부호와 결혼하게 된다. 모든 것을 가진 그녀는 30년 후, 자신만의 정의를 위한 복수를 위해 마을을 찾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차아나시안의 제안에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를 언급하며 거절하지만 가난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변해간다. 가난 했던 사람들은 10억을 가진 것처럼 일의 죽음을 담보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간다. 자신들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일의 죽음만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것이라며, 이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한다. 돈 앞에서 약해지는 사람들의 위선적 모습이다. 사람들은 이익 앞에서 나름대로의 ‘ 정의’를 만들며 ‘일’을 죽음으로 몰아세운다. 마을 사람들은 30년전의 일을 명목으로 재판을 연다.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가족마저 만장일치로 일이 유죄라는 것에 찬성하고 그들의 암묵적인 압박 속에서 일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