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의 생애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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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희성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정희성론 》
문학교육론
1. 정희성의 생애와 활동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우리 시대의 노동현실과 민중의 정서를 노래해 1970년대 사회시의 경향을 대변한 중견시인이다. 1945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으며, 대전이리여수 등지에서 성장했다. 1964년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고, 1968년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다. 1970년 군제대 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및 대기고등학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군복무시절이던 1970년 1월 신춘문예에 시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데뷔 초기에는 질박한 시어로 표현된 (1970), (1972), (1974), (1974) 등의 작품을 비롯해 에 실린 설화와 향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74년에 첫시집 「답청(踏靑)」을 간행하였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에 (1978), (1978), (1978) 등의 사회성이 강한 시들이 포함 된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발표한다. 이후 두 번째 시집이 나온 지 13년 만인 1991년 세 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펴냈으며, 2001년에는 표제시 와 , , 등을 비롯해 43편의 신작시가 실려 있는 네 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를 펴냈다.
또한 1981년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1997년 시와 시학사상을 수상했다. 저서에 네 권의 시집 이외에 번역서 과 김태형과 공저인 이론서 등이 있다.
2. 작가의 경향 및 변모 과정
정희성은 시적 자기 인식으로부터 삶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탐구에 이르기까지 1970년대 시의 한 경향을 가장 잘 대변해 온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60년대에 참여시를 개척한 김수영, 신동엽의 뒤를 이어 민중의 일상적 삶에 내재된 건강성과 생명력을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견고한 사실주의의 시적 성취를 이룩하였다.
정희성의 초기 시는 사회비판적인 성향보다는 고전적 상상력에 기초한 전아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이 초기 시의 한계로도 지적되는데 정희성의 첫 시집 「답청」에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이 시집의 작품들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고전적이면서 추상적으로 드러내어 삶의 구체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죽은 백씨(白氏)의 뼈 속에서
휘파람소리 들린다
그 생전에 불어 못 본 휘파람을
비바람이 대신 분다
죽어 오랜 김대건 신부의 뼈도 뼈지만
참고문헌
※ 참고자료
김용락, 70년대 민중시의 정론성, 문예미학, Vol.9 No.1, 2002
박성모, 시대를 건너는 시의 힘, 소명출판, 2005
조근태, 시인박물관, 현암사, 2005
홍용희,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천년의 시작, 2004
한샘문학교육연구회, 한샘종합문학, 한샘출판사, 2005
유광재, 유광재 전공국어 문학론(하),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