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름 포이어바흐 Anselm Feuer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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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젤름 포이어바흐 Anselm Feuerbach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Anselm Feuerbach: Medea, 1870
왕비, 자식들을 살해하다 (The queen murders her children)
안젤름 포이어바흐(Anselm Feuerbach)는 기념비적 크기의 여성을 기념한다. 그녀가 일어선다면 아마 캔버스 밖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이 작품 속 어느 누구도 자식들과 함께 있는 이 여주인공만큼 크지 않다. 포이어바흐는 다른 인물들을 배경 속 깊이 위치시킴으로써 그들의 크기의 차이를 그럴듯하게 만든다.
불안정하게 큰 여성은 정교하게 균형 잡힌 작품 안에 놓여 있다. 좌측의 3명의 피라미드 구조의 무리는 우측의 배와 함께 있는 남자들의 무리에 대응된다.;어머니가 좌측에 기대있는 반면 선원들은 우측을 향해 배를 움직이고 있다. 갈색 덮개를 쓴 인물은 작품의 중앙에서 수직적 고정 장치를 제공한다.
포이어바흐는 구성적 구조에서 뿐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들의 관계에서의 조화를 강조한다.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지 않았거나 이 그림이 ‘메데아(Medea)’ 또는 ‘메데아의 작별(Medeas farewell)’이라고 제목이 붙여지지 않았다면, 아마 화가가 대중에게 바다 옆의 행복한 가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메데아라는 이름은 살인자와 동의어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콜키스(Colchis), 흑해의 동쪽 해안에 있는 코카서스의 왕국에서 시작된다. 그리스인들에게 그 사람들은 문명 세계의 경계 너머에 있는 야만인들이었다. 하지만 콜키스는 유명한 황금양털로 알려진, 그리스왕의 아들 제이슨이 얻고 싶어 했던 양털을 소유하고 있었다. 후에 그들의 배의 이름을 따 아르고선의 선인들로 알려지게 되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그는 콜키스로 항해했다.
제이슨이 용기와 힘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후에야 콜키스의 왕은 양털을 포기하기로 동의했다. 제이슨에게 주어진 일은 불을 내뿜는 두 황소가 있는 밭을 쟁기질하고, 용의 이빨로 그것을 톱질하고, 밭고랑 사리에서 자라난 무장한 남자를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리스 영웅에게조차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왕의 딸 메데아는 그를 도왔다. 그녀는 신전의 신녀였으며,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의 손녀이자 마녀 키르케(Circe)의 조카였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주문을 알고 있었으며 제이슨을 위해 사용한 마법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먼 나라에서 온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했고, 그래서 그녀는 그들과 함께 멀리 항해했다. 그녀는 황금양털을 지키던 용을 잠들게 만들었고, 그녀의 친동생이 그녀를 쫓아왔을 때 죽였으며, 아르고 선인들과의 많은 모험 후 마침내 그녀가 제이슨의 두 아들을 낳은 코린트(Corinth)에 정박했다.
제이슨은 이후 메데아를 버리고 크레온 왕의 어린 딸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모욕당하고, 분노하고, 그녀의 남동생을 살해했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고, 지지자 없이 그리스에 남겨진 메데아, 자신에 차있고 신비로운 이방인인 메데아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녀는 복수를 모색했고, 제이슨의 신부를 독살하고 그녀의 친 자식들을 찔러 죽였다.
그림의 하단에 누워있는 말의 두개골은 임박한 비극을 가리키는 것이다. 긴 옷 속에 쌓여진 인물, 유모이거나 하녀인 여인은 그녀의 손에 얼굴을 묻고 있다.-그녀는 닥쳐올 일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시대는 메데아를 다르게 조명한다 (Every epoch views Medea differently)
기원 전 431년 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는 이 전설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것을 여성의 지위가 자유로운 시민보다는 노예에 가까웠던 사회에 발표했다. 그리스인들에게 모든 전통에 대한 반항과 남성의 배짱으로 행동한 여성은 단지 이방인, 야만인, 그리고 마녀일 수밖에 없었다. 비극의 끝 부분에서 그녀는 용들이 이끄는 이륜차에 그녀의 죽은 아들들을 눕히고 모든 인간의 심판 위로 떠오르며 떠나간다. “가장 높은 자의 지배력(hand)은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에우리피데스는 결론에 이렇게 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그는 길을 알고 있다.”
전선을 계속된다.: 메데아의 용 마차는 그녀를 코린트로부터 그녀가 왕과 결혼해 그의 아들을 낳게 된 아테네로 데려간다. 하지만 좌절된 독살 시도 후에 그녀는 내쳐지고 마침내 그녀의 고향 코린트로 돌아간다. 그녀의 이야기의 이 두 번째 부분은 에우리피데스의 흥미를 끌지 않았고, 그 이후 거의 모든 예술가들에 의해 비슷하게 간과되었다. 모두 그의 특정 시대가 듣고 싶어 한 소재로부터 차용했다. 따라서 지오바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1313-1375)는 그의 유명한 인물들의 짧은 위인전에서 메데아를 경계의 예로 포함시킨다.: 열정만을 따르는 자는 악을 낳는다. 15세기 플로렌틴의 결혼식 상자는 자주 이야기의 시작 부분으로 장식되었다. 따라서 콜키스의 공주는 아무런 의문 없이 그녀의 아버지를 떠나 그녀의 남편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어린 신부들이 그렇게 하기로 기대된 것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