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도자교류사 마이센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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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 도자교류사 마이센으로 가는 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동서도자교류사
[마이센으로 가는 길]
일본인이 일본인의 시각에서 쓴 이 책은 도자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도자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나 역시 아름다운우리도자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이런 총채적인 흐름을 알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이 책이 우리수업의 과제로 주어지고, 덕분에 동양에서 서양에 이르기까지 간략하지만 전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전반적인 지식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만큼 저자는 도기와 자기의 정의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토기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석기, 그 다음에 도기와 자기가 나왔다. 이것들의 차이는 굽는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고, 이것은 흙의 종류에 따라서 결정된다.
중국과 페르시아는 도자기문화의 중심지로 불린다. 특히 중국은 청화백자와 청화 등을 중국 내수용뿐만 아니라 유럽등지에도 천문학적인 숫자의 도자기들을 수출했다. 유럽 사람들은 중국 청자의 아름다운 색깔과 자신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도자기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도자기를 부의 상징으로까지 여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드는 점은 도자기를 자신들 스스로 만들지 못했나 하는 점이다. 물론 유럽등지에서도 많은 비슷한 토기 석기들을 썼지만, 중국의 1300도의 가마 안에서 만들어내는 도자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도자기는 자토 즉, 카올린을 썼기 때문에 이런 고온에서 단단한 자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온도의 차이는 이 책에서 설명하듯이 전 세계적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자기의 재료인 흙도 중요하지만 도자기의 색을 결정하는 유약도 중요하다. 코발트는 청화백자가 ‘우과천청’한 색깔을 내도록 한다. 이런 색깔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옥과 같은 색깔을 내기 때문에 청화백자가 사랑을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중국의 자기가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우리나라가 도자기를 생산했음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만들었다. 한국은 중국의 도자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청자와 백자를 만들어 냈다. 그중 특징적인 것은 ‘상감청자’와 ‘인화문 기법’은 한국 특유의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평가한 대목이 여럿 보였다. 일반적으로 도자기에 관해서 우리나라사람들이 평가하면 보통 훌륭한 말만 너저분하게 써놓은걸 종종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분석하고 평가해놓은 것을 보면서 긍정적인 평가가 있을 때는 절로 기분이 좋았다. 특히, 일본의 도자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일본문화에 대해서 일본에는 ‘동시 발생적으로 생겨난 문화, 전파된 기법에 의한 문화, 또 그것들을 소화해낸 일본적 문화 등 세 가지 요소’ 가 있다고 평가했을 때 인상 깊었다.
이런 자기의 흐름은 4장에서는 ‘동양의 자기, 서양으로’ 라는 제목으로 서양으로 건너간다. 중국자기의 흐름에 대해서 옛날 사람이 살아돌와서 말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조사는 유적이나 침몰한 선적등에 의해서 알 수 있다. 특히 푸스타트 유적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청나라때의 자기들은 도자기조사에 큰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정황적이고 물증적인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유럽을 전역에 걸친 중국 도자기의 영향력의 범위를 알 수 있었다.
요즘 중국에서는 진짜와 비슷한 가짜 만들기에 정신이 없다. 비슷하게 생긴 밸트, 지갑, 옷, 음식 심지어 최고급 대형 승용차까지 복재를 해대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의 대형 승용차에 해당하는 최첨단기술이 예전이 중국도자기와 같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들의 생각과 유럽사람 들이 생각하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유럽에서도 최첨단 상품인 도자기를 복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러 노력 끝에 독일 작센왕국의 수도였던 드레스덴 교외의 마이센 가마에서 마침내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 했다.
자기는 연금술사인 뵈트거가 처음 만들었다. 그는 제법을 중요한 비밀로 지키고 죽기 전에 아우구스트 2세의 신하 두 사람에게 자토와 유약의 조합을 따로 알려주는 등 신중하게 행동함으로써 자기 제작기법을 마이센에서만 독점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도 뵈트거가 죽은 후 그레고리우스 해롤트 일족이 마이센 가마를 이끌어가고 난 뒤에 또다시 요한이 죽자마자 두 직인이 빈 가마에 뽑혀감으로써 빈에서도 자기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기의 생산지역도 늘어나고, 그에대한 기술도 많이 전파됨으로써 유럽에도 마이센이라는 본거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도자기 문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의 유명도자 브랜드가 생겨나고 이런 브랜드들은 현제 세계도자기의 수요를 주로 충족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 한 점은 유럽이 주로 도자기를 수입했던 중국과 일본에 역수출을 하게 되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봤던 드라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때는 엄청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고 스승이 제자를 호되게 혼을 내는 장면을 보았다. 한 개의 도자기를 구울 때조차 이런 관심과 노력이 필요로 하건만 우리는 현제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현저히 부족한 것 같다. 우리가 우리 가마의 우리 도자기에 무한한 정성을 다할 때 비로소 ‘상’품 중의 ‘상’품의 도자기가 만들어 질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 미스기 다카토시. 동서도자교류사-마이센으로 가는 길. (주)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