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도자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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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서양의 도자기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동양의 도자기 역사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전사-
-한~남북조 시대-
-수,당-
-송,원-
-명,청-


-한국출토의 중국 도자기-
-일본출토의 한국 도자기-
-중국출토의 한국 도자기-
2. 서양의 도자기 역사



-유럽의 자기-
-고대, 중세-
-근세-
3. 맺음말
본문내용
1.동양의 도자기 역사


동양에서는 은·주 시대부터 1,200∼1,300℃의 높은 온도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때부터 더욱 발달하여 한·육조 시대에는 청자 및 천목이 제작되었다. 당·송시대에는 각지에서 동양풍의 독특한 도자기인 청자·백자·천목류의 것이 만들어져서 서양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국의 토기문화의 기원은 BC6000년경부터 시작된다.


-신석기 시대-

산직할시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원시 민무늬토기와 둥근 덧 띠무늬 토기〔原始無紋土器〕가 있으며, 뒤이어 패각으로 무늬를 그린 빗살무늬토기가 나타났다.


-청동기 시대-

무늬 없는 토기가 발달하였다

-철기 시대-

평양 부근에 한나라의 한사군이 설치되어, 한대의 도기문화의 영향을 받아 회도·회유도·녹유 등이 제조되었다. 한편 경주시 조양동 고분에서는 연질 토기가 출토되었고, 김해시 회현동에 위치한 김해패총에서 출토된 김해토기는 기면에 승석문을 그려 넣어 고온에서 구워 만든 경질 토기(硬質土器)이며, 그 중에는 자연유가 입혀진 것도 있다. 이 김해토기는 삼국시대 신라 토기의 모체가 되었으며, 일본의 쓰시마 섬〔對馬島〕·이키 섬〔壹岐島〕·기타큐슈〔北九州〕의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유적에서도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일본의 경질도기인 수에기〔須惠器〕의 번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에는 북쪽에 고구려, 남쪽에 신라와 백제가 형성되어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도 독자적인 도기문화를 형성하였다. 고구려의 도기는 회도인데, 중국 동북부의 도기와 유사한 점이 많으며, 후에 연유도도 번조되었다. 신라·백제에서는 환원염소성에 의한 회백색·회흑색의 경도 즉 신라 토기가 주류를 이루어 발달하였다. 신라 토기는 돌이 섞이지 않은 고운 태토로 만들어 1000℃ 이상의 고열로 구운 것이며, 두드리면 금속성 소리가 날 정도의 경도를 가지고 있으나 유약을 입히지 않아 홉수성이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마 속에서 굽는 도중 재가 기표에 떨어져 자연유로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항아리·병·잔·굽다리접시·그릇 등 종류는 풍부하고, 기면에 선각으로 문양을 그렸다. 신라 토기는 5세기 초 일본에 전하여져 고치〔河內〕의 스에무라〔陶邑〕에서 경질도기가 번조되었다. 신라 토기는 이러한 일상적인 기명 이외에 기마 인물형 토기·압형토기·토우, 기면에 인물이나 동물을 붙인 부장용의 명기 류 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경주 시 황남 동의 황남대총에서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러한 신라 토기는 꾸밈새 없는 질감, 음각으로 된 파상문·삼각문·평행집선문·원권문 등의 기하학적 문양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고졸하면서도 소박한 고대인의 정감이 넘쳐흐르는 듯한 정신적 힘이 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 삼국시대에는 중국 화난 고월자의 청자·흑유자 등이 수입된 것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통적인 신라 토기 위에 녹채·이채·삼채 등의 연유도, 회유를 의도적으로 입힌 회유도 등이 새로 나타났다. 기면에 연속적인 인화장식을 하고 그 위에 회유·연유를 입힌 것인데 기본적으로 신라 토기의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도기이다. 또 경주의 안압지와 황룡사 등지에서는 녹유와가 대량으로 출토되며 건축 장식에 연유도가 많이 이용되었다. 통일신라 토기의 특징은 중국의 금속기의 영향으로 기형과 문양이 변화되었으며, 제기적 성격이 농후한 신라 토기에 비하여 합리성과 실용성이 강조된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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