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라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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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경주 사라리 유적
유적 원경 유적 전경
경주시에서 영천방향으로 15km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경주시 서면 사라리 마을 서남쪽 구릉일대에 위치한 사라리 유적은 1994년 경주박물관에서 실시한 경주 주변지역에 대한 지표조사 과정에 확인된 것으로서 당시 수습된 유물의 성격과 분포규모로 보아 경주 서부지역 일대의 대규모 고분유적 중의 하나임이 밝혀졌다. 또한 이 유적은 지표조사 당시 사라리 마을진입로 개설로 인해 유적의 일부가 훼손되었음이 확인되었으며, 이후 1995년 7월에 공장신축을 위해 대상부지에 대한 정지작업을 하는 과정에 유적이 분포하는 능선의 상부가 최고 2m 깊이까지 삭평되어 대부분의 유구와 유물이 파괴 훼손되었다. 유적이 훼손되어 유구와 유물이 지표면에 노출됨에 따라 긴급 발굴조사 된 유적이다. 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경주와 영천-경산-대구를 잇는 주요한 교통로 상에 위치해있고, 新羅 王京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군사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경주 사라리유적은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를 비롯하여 원삼국시대의 목관묘와 삼국시대의 적석목곽묘, 목곽묘, 석곽묘가 함께 분포하고 있는 대규모 고분유적이다. 특히 130호 목관묘에서 확인된 청동검, 방제경, 호형대구, 철복, 판상철부 등은 1∼3세기에 있어서 경주지역의 정치적 수준과 경제력 및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지표가 되고 있다.
발굴조사결과 靑銅器時代 住居址를 비롯해 原三國時代에서 三國時代에 이르는 다수의 분묘유구가 조사되었고 경주 주변의 단위 고분군에서 원삼국시대 및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묘제가 시대순으로 조사된 획기적인 유적이다. 조사된 유구는 靑銅器時代 住居址 5동, 原三國時代 木槨墓 7기, 原三國·三國時代 木棺墓 78기, 三國時代 積石木槨墓 43기, 石槨墓 12기, 甕棺墓 3기이다.
木棺墓의 경우 130호가 가장 주목되는데, 입지상으로 구릉 아래쪽에 위치하는 유적의 다른 木棺墓에 비해 구릉 정상부에 위치해 있고, 묘광의 규모도 길이 332cm, 폭 230cm, 깊이 100cm로 여타 木棺墓에 비해 크다. 또한 출토유물도 虎形帶鉤, 倣製鏡, 細形銅劍, 판상철부 70매, 鐵, S자형 재갈, 牛角形把手附壺, 주머니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에 반해 사면 아래에 위치하는 木棺墓는 입지상이나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고, 유물도 瓦質土器 한두 점과 철검, 철부 같은 철기류가 한 두점 부장될 뿐이다. 사라리 130호 널무덤은 같은 시기의 다른 무덤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다. 또한 널 아래에 70여개의 쇠도끼를 나란히 깔아 한국식 동검과 쇠 단지, 호랑이무늬띠고리 등 다수의 금속제품과 조합식 쇠 뿔잡이 목항아리, 주머니호 등의 토기를 부장한 점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 수장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木槨墓는 총 78기가 조사되었는데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후기 瓦質土器가 출토되는 단계의 목곽묘로 18호와 27호가 이 단계에 속한다. 그 중 18호는 옥성리 78호·하대 43호 같이 방형의 목곽묘이며, 유물의 배치가 ‘ㄱ자상이다. 또한 木槨을 불태운 흔적이 관찰되어 주목된다. 다음은 古式 陶質土器 단계의 木槨墓로 전대에 비해 목곽묘가 더욱 세장화되며, 특히 소위 “구정동형 목곽묘”나 “경주식 목곽묘”가 등장하는 단계로 55호, 97호가 대표적인 유구이다. 이 단계 목곽묘에서는 판갑이 출토된 유구가 다수 조사되었는데 특히 오리형 토기와 함께 판갑이 주곽에서 출토된 55호가 주목된다. 古式 陶質土器 단계 이후 목곽묘로는 新羅樣式土器가 정형화를 이루기 시작하는 109호 3·4곽 단계 토기와 유사한 토기가 출토되는 단계로 5호, 13호, 65호가 대표적 유구이며 5호에서 家形土器가 출토되었고, 13호, 65호에서는 古式陶質土器 단계의 木槨墓에서 출토되는 판갑대신 몽고발형주나 마갑 등이 출토된다. 마지막으로 積石木槨墓와 같은 시기에 하위분묘로 판단되는 木槨墓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유구로 25호나 113호가 해당되며 전형적인 新羅樣式土器가 출토된다. 積石木槨墓는 총 43기가 조사되었는데 墓槨의 형식으로 보면 單槨式, 日字形 主·副槨式, 凸字形 主·副槨式이며 다수는 日자형 주·부곽식과 凸자형 주·부곽식이다. 墓形은 일부 단장식도 조사되었으나 대부분 2기씩 나란하게 배치한 多葬式이며, 凸자형주·부곽식과 凸자형의 주·부곽식의 조합이 가장 많다. 石槨墓의 경우 총 12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소형 石槨墓이다. 積石木槨墓와 石槨墓의 시기는 5C 전엽에서 6C 전엽에 해당한다.
14,15호 전경 130호 전경
130호묘 출토 청동장식철검, 방제경, 경식 130호묘 출토 토기
앞서 살펴 본 사라리 유적의 조사내용을 조사 성과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주지역의 원삼국·삼국시대의 묘제 변화는 크게 목관묘, 목곽묘, 적석목곽묘 순으로 변화된다. 사라리 유적의 조사성과 중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경주지역 묘제 변화를 한 단위 고분군에서 살필 수 있는 점이다. 그 중 그동안 빈약했던 130호를 비롯한 목관묘의 조사는 의의가 크다. 130호는 목관묘에서 목곽묘로 변화되는 시점의 목관묘이며 木棺墓와 木槨墓의 過渡期的 양상이 잘 나타나 있고, 유물과 규모에서 이 시기 최고 계층의 분묘로 판단된다. 목곽묘에서는 갑주류가 출토되는 소위 “慶州式木槨墓”로 인식되는 細長方形木槨墓가 주목되고, 5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家形土器는 당시의 가옥구조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적석목곽묘와 석곽묘는 경주 외곽지역의 적석목곽묘와 석곽묘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