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인숙녀 존중

 1  역설적 인숙녀 존중-1
 2  역설적 인숙녀 존중-2
 3  역설적 인숙녀 존중-3
 4  역설적 인숙녀 존중-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역설적 인숙녀 존중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제 목 : 역설적인 “숙녀 존중”
내 용
오늘날 한국사회는 사회진출하는 여성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와의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에 나타나는 초등교단에서의 여초현상을 보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되는 제도들-남성과 여성의 교원 수를 일정하게 맞추고자 남성들에게 어느 정도의 기회를 더 부여하는-에 많은 여성단체들은 심한 반발을 보인다. 그러한 충돌현상만 보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사회문제라기보다는 대립되는 두 사상들 사이의 마찰로 보는 것이 더 깊은 이해일 것이다.
앞에 여초현상에 대해 언급했듯이 오늘날 문제시되는 사상과의 대립은 전통적인 유교와 여성해방의 이데올로기인 페미니즘과의 대립에 있다.
그것은 기존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의 여성 차별화에 유교사상이 뿌리 박혀있어 현대에 와서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고있는데 이것을 유교사상의 잘못으로 다 떠넘기려 하고 있다. 여기서 패미니즘과 유교사상의 대립이 있다. 인터넷에서 그들의 대립양상의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유교와 패미니즘의 내용을 다루는 내용이 의외로 많이 있어, 이렇게까지 크게 대두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우선 많은 현대인들은 유교사상을 비판하기 앞서 신념이나 사상을 먼저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급이 존재하고 소규모집단인 지배층에 의해 대다수의 피지배계층이 지배받아야 했던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극단적으로 비판하며 한쪽으로 몰고가는 유학이나 불교, 또는 서양의 기본사상인 기독교는 이미 모계사회에서 부권사회로 넘어 온 뒤에 체계화된 사상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 또한 그 시대가 가졌던 확고하고 뿌리깊었던 전통사상, 신념이었다는 것이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오늘날 달라진 시대에 맞춰 따를 것은 따르고 맞춰서 변화할 것은 변화시켜 우리의 것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레이디 퍼스트 라는 서구의 관습이 여성 존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 생각이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하나의 신념처럼 세습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공개적으로 거론되었고 몇몇의 철학자들에게서 그러한 모습이 발견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에 대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신이 뒤떨어지고, 나약하며, 더 심술궂고, 더 복잡하며, 충동적이다. 남자의 본성이 더 완전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위에서 지적한 성질들이나 능력은 남성에게서 각각 완전한 성취를 볼 수 있다.” 이 말은 개별의 여성이 아니라 일반의 여성을 두고 한 평가이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은 결코 여성에 대하여 있을 수 있는 한 개인의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서양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그 문화적 및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은 등급이 떨어지는 열등 존재라는 생각은 서양 문화에서 하나의 신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신념은 공개적으로 거론되어 왔고,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쇼펜하우어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모두 확실하게 이 신념을 표명하였고, 결코 불합리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동양에서는 공자의 말로서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친근하게 대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이 말에는 분명 여성에 대한 차별 의식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중명은 이러한 주장을 하고있다. 이것으로 공자의 여성 차별관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공자의 그 말은 생활 속에 있을 수 있는 특정한 상황에 한정하여 나온 말이지, 결코 남성과의 상관관계에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여자를 대하기란 대단히 미묘해서 너무 소원히 대해도 안되고 친근히 대해서도 안되는 것이 사실이라도, 이것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우리는 그와 유사한 표현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컨대, 상사를 모시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저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면 얕잡아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 말씀드리면 화내기 쉽다. 라든가 총각과 함께 지내기는 정말 어렵다. 좀 잘해주면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고, 좀 멀게 대하면 별의별 소문을 다 퍼뜨리고 다닌다. 등이 그런 말에 해당된다. 이런 말들은 일상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 그런 일들은 흔하게 발견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대한 차별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앞의 공자의 말은 생활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두고 한 말이지, 남과 여라는 상관관계 속에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말이 아니다. 이 주장이 모두 옳고, 유학에서는 양성불평등이 없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이 전부 고루하고 던져버려야 마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네들에게 정말 그러한가? 라고 묻자는 것이다. 서로의 잘못을 짚고 얘기하자는 것이다. 서양, 동양을 막론하고 여성을 남성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는 관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사상의 기저가 되는 유학이나 불교 혹은 서양사상의 기초인 기독교는 이미 부권사회로 넘어 온 뒤에 체계화된 사상들이다. 따라서 이들 사상 안에는 남성을 중심으로 보는 관점이 들어있다.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형태로 여성운동이 진행되고 여성의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아를 선호하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고 여성 할당제를 주장해야 할 정도로 여성의 사회 진출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의식이 열려 있는 한 바르지 않은 관행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길로 유학사상의 재해석을 제시한다.
한 사회의 전통이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하는 것은, 전통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부분이라는 점과 그것의 현대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이다. 고전이나 전통이 오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재해석의 여지를 갖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감각과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재구성하지 않고 옛 것 그대로 오늘의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쉽다. 지금의 상황에 전혀 맞지 않으며 정당하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하게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필요한 것이라면 역해서 재구성해야 합니다. 각 시대에 맞던 유교의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우리는 오늘에 맞는 유교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학 안에 남성 중심의 사유가 들어 있는 것은 그것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학뿐 아니라 동서양 사상 안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 것은 뒤떨어지고 부정적인 것이며 서양의 것은 더 선진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여성의 지위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동시대의 서양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서처럼 서양의 시각 아래에서 문제들을 파악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식의 답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체의식을 버리고까지 타인을 추종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