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S국민보건서비스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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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NHS국민보건서비스 개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REPORT
N.H.S
국민보건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
Ⅰ. 서론
Ⅱ. 본론
1. 영국의 의료보장 시스템의 역사
1) 근대 이전의 의료양상과 구빈법
2) 의료문제의 심화와 정부의 대응
3) 20세기 초반의 의료정책
4) NHS 의 형성
2. 영국의 의료보장제도 NHS의 내용
1) NHS란?
2) GP란?
3) NHS의 기능과 재원
3. NHS의 개혁
4. NHS의 도입
5. NHI와 NHS의 비교
Ⅲ. 결론
1. NHS 제도 도입이 주는 시사점
2. NHS 의 문제점과 과제
Ⅰ. 서론
현재 의료시설은 의료와 그 전달 체계의 발전에 부응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의료가 단순히 병원이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 지역사회라는 넓은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N. H. S 라는 제도는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판과 동시에 격찬을 받는 제도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국민들이 일정액의 보험료를 납부하여 기금화 하였다가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급여를 해 줌으로써 국민 상호간 위험분담을 통하여 국민의 의료서비스를 보장해 주는 의료보험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국가의 재정 부담으로 국민보건 서비스 형태(National Health Service: NHS)의 의료보장을 실시하고 있다. 즉, 국민보건 서비스의 재정이 대부분 국가의 일반회계에서 충당되어 국민은 무료로 진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보장 형태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음에서는 영국의 의료보장제도의 역사를 살펴보고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지금의 NHS방식이 도입되었는지를 알아보고 NHS방식의 특징과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Ⅰ. 영국의 의료보장시스템의 역사
1) 근대 이전의 의료양상과 구빈법(1598, 1601)
중세에 접어들면서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 이후부터 간호와 치료는 교회의 주요사업이 되었다. 충분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교회는 각지에 병원을 세우고 수도사와 수녀를 통하여 주로 가난한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시술과 간호를 제공하여 왔다. 정부는 이러한 의료 문제에 대해 대개 교회나 자선기관에 의존하거나 전적으로 개인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의료문제에 대한 태도는 절대왕정시기의 헨리7, 8세 엘리자베스 1세를 거치면서 달라지게 되는데 이는 의료를 포함한 빈민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의 개입을 표명하는 구빈법 제정(1598, 1601)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빈법의 의도는 그 당시에는 빈민을 구제한다는 목적 하에서 시작하였지만 오늘날의 복지의 개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유는 구빈법의 내용에 있었는데 내용인 즉 구제할 필요가 있는 빈민과 구제할 필요가 없는 빈민을 법적으로 구분하여 전자에게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구호를 제공하고 후자는 부랑자로 방황하면서 각지의 주민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구빈원에서 강제로 노역하게 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구빈법의 의의는 영국 정부가 그간 민간자치에 방임하던 이러한 부문에 보호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에 있다.
2) 의료문제의 심화와 정부의 대응: 구빈법 개정(1834)
17,8세기는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해 의학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고 각종 치료법들이 개발된다. 또한 출판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량보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 뒤에는 이시기의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 그 중에서도 의료문제가 문제시되기 시작했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도시 노동자로 흡수된 사람들은 빈민거주지에서 만성빈곤과 기아, 장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인한 각종 직업병과 질병 등으로 인해 주거환경이나 위생 건강상태 모두 매우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이들은 실제 지불능력이 없어 실질적인 의료수요자가 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의학발전의 과실은 중산층에게로 돌아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구빈법 개정(1834)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구빈법의 개정은 빈곤층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즉 빈곤의 책임은 그 개인에게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에 대한 벌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천명한 것이다. 빈민, 병자, 노약자들에 대한 정부의 구제수준은 최소액으로 격감시켜 구제에 대한 생각을 단념시켜야 한다는 의도로서 구제의 수준은 일하는 노동자의 최저임금보다 적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그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이러한 단념의 원칙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재량을 대폭 축소해야 했으며 결국 중앙집권화를 통해 각 지방의 구빈원 수도 1만5천개에서 600여개의 구빈법 연합으로 대폭 축소하고 빈민구제의원회와 이의 감독을 받는 세 명의 구빈감독관에 의해 운영되도록 하였다.
3) 20세기 초반의 의료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