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토어의 생애와 업적

 1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
 2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2
 3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3
 4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4
 5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5
 6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6
 7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7
 8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8
 9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9
 10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0
 11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1
 12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2
 13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3
 14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4
 15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1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칸토어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시작하는 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그리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와서 수학책을 펼쳐보면 항상 가장 처음에 나오고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집합이었다. 그리고 이곳 고려대 평생교육원 수학 전공 첫 학기 첫 번째 수업 과목 역시 집합론이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그 집합에 관한 것을 배우기도 해서 조금 괜찮았지만 뒤로 갈수록 평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소한 여러 개념들, 특히 무한집합에 관한 것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배웠던 집합들은 벤다이어그램 안에 모아 그릴 수 있는 유한집합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무한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해하기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고 배워 깨달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수학사 리포트를 계기로 시험에 대한 부담 없이 지난 학기 ‘매우’ 부족했던 집합론에 대한 공부도 하고, 무한의 세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자 마음먹었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한에 대해 생각할수록 생각할 것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아직은 어려운 집합론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무한의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집합론을 정립한 놀랍고도 위대한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에 대해 알아보자.
2. 칸토어의 생애
수학자가 되기까지
게오르크 페르디난드 루드비히 필립 칸토어(1845~1918)는 1845년 3월 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상당한 수준의 예술적인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1856년 12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하게 된다
칸토어는 청소년기에 수학에 대한 뛰어난 재능과 열성을 인정받고, 자신도 수학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현실적인 아버지는 아들이 수학적인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장래 직업으로 더욱 유망한 공학 방면의 직업을 가지게 하려고 완고하게 노력했다. 맏아들이었던 소년 칸토어는 겉으로는 수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로 해 1862년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뒤늦게나마 칸토어의 아버지는 아들이 수학자의 길을 갈 것을 허락해 다음해 칸토어는 베를린 대학으로 와서 다시 학업을 계속하게 된다.
활발한 연구기
대학에서 칸토어의 연구는 주로 그 당시의 관심사인 수론에 관한 것이었는데, 정수론에 관한 논문으로 1867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집합론 발표 이전의 칸토어의 연구는 주로 수론, 특히 삼각함수(푸리에 급수) 이론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삼각함수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무한급수의 수렴에 관한 문제와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칸토어는 연속, 극한, 수렴 등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무한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 그곳에서 그는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크로네커, 바이어슈트라스, 쿠머 등의 강의를 접하게 된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1869년 할레(halle)대학의 강사로 시작하여 1872년 조교수, 1879년 교수가 되며 1905년까지 이 대학의 교수생활을 하였다. 그는 정수론 이외에도 해석학을 연구하게 되고, 그 후 생의 대부분을 수학 연구에 쏟았다. 그리고 이 연구과정에서 데데킨트와 서로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이 데데킨트와의 우정은 나중까지 이어져 칸토어의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 시기에 그는 방대한 영역에 걸쳐 연구를 했었는데, 수많은 수학자들이 도전했다 실패한 난제를 해결하기도 하였고, 유리수가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임을 증명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탁월한 논문들을 많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