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릭 제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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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리드릭 제임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프리드릭 제임슨에 대해서
프리드릭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와 형식, 언어의 감옥이라는 책으로 유럽철학과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미국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저작을 한자이면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서 비중 있는 글을 많이 쓴 사람이다. 제임슨은 지속적으로 역사라는 개념을 고수할 것에 대한 중요성과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행하는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실천의 역사적 분별을 주장해왔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제임슨의 개념화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급진적 이탈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라는 급진적 전통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도입하고 옹호하며 발전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이 도달한 정점으로 이해해야하며 제임스가 지은 「시간의 씨앗」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변증법적 모순보다도 더욱 이율배반적인 개념에 가까운 문화로 특징화하고 있고 또한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주된 입장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화에서 제기되는 두 개의 지속적 주제와 문제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제임스가본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특별한 스타일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문화에서 출현하는 새로운 형식적 특질을 새로운 사회적 삶의 오형과 경제 질수에 연관 짓기 위한 시대구분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내제한 심층 구조적 역동성의 문화적 표현이며 더 구체적으로 제 3의 기계시대에 발현되는 문화적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제임슨이 다른 이론가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훌륭한 이론적 틀이 마르크스주의나 산 마르크스주의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특정한 문화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시대구분의 개념’이라고 강조 하였고 다국적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지배문화’라고 하였다. 제임스의 이러한 주장에는 만델사상과 윌리엄즈사상이 바탕이 되어서 존재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에는 혼성모방(이하 페스티쉬)의 문화, 즉 ‘역사적 암시의 자족적 유희’ 가 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페스티쉬는 패러디와 혼동되는데 이는 둘 다 모방과 흉내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cf) - 패러디 : 어떤 기준이나 관습으로부터의 일탈을 흉내 내거나 조롱하는 것, ‘배후동기’를 가지고 있다.
- 페스티쉬 : 일탈할 기준이나 관습이 존재할 여지조차 없는 ‘텅 빈 패러디’이거나 ‘공허한 복제’ 이다. 즉, 패러디와 같이 기묘한 가면의 모방이며 죽은 언어로 말하는 것이지만 패러디가 갖는 배후 동기 없이 그런 흉내만 희미하게 내는 것이다. 풍자적 충동이나 웃음도 없으며, 잠시 빌려온 비정상적 언어 외에는 아직도 건강한 정상적 언어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조차 없기 때문에 텅 빈 패러디 이다.
제임슨이 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생산물들은 대중적 텍스트를 다른 문화로부터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자를 갈라놓던 현격한 차이의 흔적조차 사라질 지경이 될 정도로 그것들을 능동적으로 합병시킨다는 것으로 특히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관계에 잘 들어맞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문화생산자들은 고급문화/대중문화의 구분을 용해시킨데 대해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체의 죽음’, 개인주의의 종말을 나타낸다는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제임슨은 “개인적 주체가 사라진 것과 함께 개성적 양식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이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페스티쉬라는 것을 생겨나게끔 했다”고 말하였으며 이러한 페스티쉬의 세계는 “양식상의 혁신이 더 이상 불가능 하며, 죽은 양식을 모방하거나, 상상의 박물관에나 있음 직한 가면을 쓰고 그 스타일에 맞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만이 남은, 그런 세계”이며, ‘인용’의 문화이자 ‘상호 텍스트성’의 문화라고 하였다. 즉 그것은 오리지널한 문화생산이기보단, 다른 문화 산물에서 다시 태어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포스트모던 문화는 “얇고 깊이가 없는, 새로 나타난, 문자 그대로 경박한”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잠재적’ 가능성이 없는 표면과 이미지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 해석의 에너지를 다른 이미지, 다른 표면, 상호 텍스트성의 교류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감동의 소진’을 초래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페스티쉬의 예로는 향수영화가 있는데 이것의 예로 들고 있는데 예를 들면 1980년대와 9년대의 영화들인 「백 투 더 퓨처2」,「페기 수의 결혼」, 「럼블 피시」등이 이 범주에 속하며 이 영화들은 1950년대 상실된 욕망의 대상이 특권으로 남은 미국적인 양식과 분위기의 특징을 되살려내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향수 영화는 과거를 비슷하게 환기시키며, 또한 과거의 양식과 분위기를 재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바라보는 어떤 방식을 재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임슨은 이러한 영화들이 ‘진짜’과거를 되살리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과거의 문화적 신화나 스테레오 타임으로 대충 때우고 있다고 하고 거짓 리얼리즘을 제공한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다른 영화에 대한 영화 또는 다른 재현에 대한 재현이라고 보았고 그렇기에 이러한 영화는 ‘진짜’역사가 미학적 양식의 역사에 밀려나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페스티쉬외에도 제임슨은 문화적‘정신분열증’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두 번째 양식으로의 연결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라깡이 말하는 언어적 혼란, 즉 기표들 간의 일관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함을 일컫는 바로 그 의미의 맥락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분열증은 시간을 연속적인 흐름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로서 경험하게 되는것인데 그렇기에 현재에는 다만 과거의 침입이나 미래의 가능성이 가끔씩 흔적으로 남을 따름이다. 즉 시간의 지속성이 붕괴함으로써, 현재의 체험이 강렬하고도 놀랍도록 생생해지면서 ‘물질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분열적이라는 것의 다른 이유로는 그것이 역사에 대한 감각을 (그리고 현재와는 다른 미래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분열적이라는 것은 ‘역사적 건망증’을 앓고 있는 문화, 영원한 현재의 불연속적 흐름에 갇혀있는 문화라하는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 다국적 후기 자본주의 ‘지배문화’라는 주장에 은연중 나타나듯이, 제임슨이 강조하는 마지막 요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구제불능의 상업적 문화라는 것이고 또한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의 상업문화에 저항하기 보다는 “소비 자본주의의 논리를 복제하고 재생산하며 보강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포스트모던 문화는 여기서 더욱 나아가 “후기자본주의 논리를 단순히 복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더욱 보충시키고 강화시킨다.” 여기서 “예술 의 생산도 일반적으로 상품생산에 통합되는” 과정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라고 하였고, 그렇기에 더 이상 문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행위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가장 중요한 경제행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문화를 이데올로기의 재현이나 경제적 현실의 비물질적 반영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고급/대중문화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문화영역과 경제행위의 구분조차도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로 보아야한다. 이것에 대해 제임슨은 “위대한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이고 ‘고상한 진지성’에 비교해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특징은 그 ‘본질적인 사소성’이 있다고 보았고 게다가 이것은 ‘사회의 사회주의로의 변형’을 방해하는 문화라고 하면서 제임슨은 이러한 도덕적 판단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거부하였지만 반면 변증법적 접근을 주장하는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도 결국 대중문화에 대해서만큼은 정통 프랑크푸르트학파적 비판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즉 이것은 고급/대중문화 경계의 포스트 모던적 붕괴는 모더니즘의 ‘비판적 공간’을 희생시키고서야 비로소 얻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이 비판적 공간의 파괴는 문화의 소멸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며 ‘폭발’에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이전의 사회문화적 시기와 구별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일상생활의 전적인‘문화화’또는 ‘예술화’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비판적 거리’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로 더 이상 합병되거나 변절된 여분의 비판적 공간도 남아있지 않기에 ‘합병’이나 ‘변절’에 대한 주장이 무의미해지고 이것은 즉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관주의가 최고로 심화된 형태를 보이기도 하기에 제임슨은 후기 자본주의의 공간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새로운‘지도’가 필요하고, 대중은 지배이데올로기에 속여 넘어가며, 말 못하고 수동적인 문화의 중독자일 뿐이고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저항의 터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비평가의 리더십만 믿고 반응할 따름이라고 보았고 제임슨은 기껏해야 대중은 대응할 수 없는 그 자신들의 무능력을 표명하는데 고작이라고 보았다.
참고자료
참고문헌
참고자료
Ⅰ. 존스트리, 대중문화와 문화연구, 발행지: 경문사
Ⅱ. 손호머, 프레드릭 제임슨 -마르크스주의 · 해석학 · 포스트모더니즘, 발행지: 문화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