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아이슬러 HannsEis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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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들어가는 말...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1989~1962)는 곡을 쓰는데 있어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음악을 썼다. 그의 음악은 12음 음악에서 예술음악에서 단순한 행진곡이나 투쟁가, 노래, 영화음악 등의 다양한 양식으로 작곡하였다. 이러한 아이슬러의 삶과 작품은 크게 4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쉰베르크와 함께 한를 받은(1926년까지), 두 번째 시기는 쉰베르크와 결별하고 난 후 노동운동에 참여한 시기(1927~1933), 세 번째 시기는 1933년 나치의 득세로 갑작스레 망명생활을 시작한 시기(1933~1948), 넷째, 반미 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미국에서 추방되어 동독에서 사회주의 문회에의 건설에 참여하는 1949년부터 사망하기까지의 시기(1949~1952)로 구분할 수 있다.
1. 초기 아방가르드 음악 (1926년까지)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빈에서 성장기를 보낸 아이슬러는 아버지가 유능한 학자였으나 교수직을 가지지 못하고 대학강사였던 이유로 아이슬러 가족의 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이슬러는 어린 시절에 잠깐 피아노를 구입하여 교습을 받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자신이 자곡한 것을 피아노가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쳐보는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아이슬러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였서 화성학 및 음악 책을 구해서 혼자 공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 그는 쉰베르크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초기 음악들은 쉰베르크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자유무조적으로 작곡한 첫《피아노 소나타 제1번》op.1 및《피아노 소곡들》op.3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곡》op.7 《관악 5중주를 위한 디케르티멘토》, 12음기법으로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피아노곡들》op.8과 성악곡《팔름슈트램》(크리스챤 모르겐스테른의 시)op.5 등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은 점점 스승의 쉰베르크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시도와 독자적인 음악언어를 찾으려는 음악이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곡이 《피아노 소나타2번》이다. 12음 기법의 단순화를 꾀하여 ‘에술음악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아이슬러의 예술적 성향이 나타난다. 이런 그의 시도들은 결국 쉰베르트와의 작별을 맞게 되었다. 스승을 떠나 노동움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전의 시기에는 칸타타《한스아이슬러의 일기》op.9, 연가곡《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심문조각들》op.11 그리고 《하이네 시에 의한 3곡의 남성 합창곡》op.10이 그것이다. 아이슬러는 12음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쉽게 이해되는 음악을 쓰기 위해 과거의 자유무조음악 양식으로 작곡하였다.
2. 노동운동 시기의 음악(1927~1933)
1925년 아이슬러는 빈 시를 빛낸 젊은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이시기 음악활동의 영역을 베를린으로 옮겨 활동 하였다. 아르투어 슈나벨의 도움으로 베를린 음악학교 작곡선생으로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찾아 나서게 된 아이슬러는 혁명적 기운이 일던 베를린에서 당시 활발히 전개되고 있던 노동문화운동에 음악가로서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이외에도 영화와 같은 실용음악의 곡들도 작곡하였다
먼저 노동음악을 중심으로 아이슬러의 음악활동을 살펴보면, 《혼성 합창을 위한 4곡》op.13 《두개의 남성합창곡》op.14 《거리에서 노래하기》op.15 등 남성합창곡을 작곡하였고, 투쟁가인《코민테른》《붉은 결혼식》《도장의 노래》《은밀한 행군》(1930)《연대가》등을 작곡하였다. 다음 실용음악은 영화음악과 무대음악 작품들을 작곡하였다. 발터 루트만의 무성영화인 ‘작품3’의 위한 음악을 작곡하였고, 브레히트의‘쿨레 밤페’‘삶의 노래’‘영웅의 노래’등을 작곡하였다. 그후 교훈극인 《조치》를 작곡하고 서사극《어머니》, 《작은교향곡》op.29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곡들》op.31 《오 팔라다, 어찌 목 메여 있는가》등이 이시기에 탄생한 예술 작품에 속한다.
3. 망명 시기의 음악(1933~1948)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유대인이며 마르크스주의자에다 음악적으로도 아방가르드였던 아이슬러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작은 손가방을 들고 잠시의 위험을 피하고자 하 것이 15년간의 김 망명 생활이 되었다.
1. 유럽 망명시기(1933~1937)
이 시기에는 노동운동 시기 작곡하지 않았던 12음기법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나치의 음악 정책인 현대음악의 배척에 의해 그의 스승이 였던 쉰베르크의 음악을 비롯한 현대음악을 새로운 각도에서 평가하게 되었다. 그는 12음기법을 사용하여 ‘단순하면서도 대중에게도 유용한 음악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칸타타를 가지고 ‘새로운 12음 성악 스타일’을 창출해냈다. 이러한 시기에 《피아노 소나티네》 및 다수의 기악곡과 합창곡《전쟁에 대하여》,《독일교향곡》을 작곡하였다.
2. 미국 망명시기(1938~1948)
미국에서 아이슬러는 대학에서 교직과 영화음악을 작곡하였다. 무성영화 ‘비’를 위해 쓴 12음 영화음악을 《14가지 비의 묘사》라고 칭하였다. 1942년부터는 자신의 향수와 고독을 내면화하는 가곡들을 조성음악과 자유로운 무조음악으로(모두49곡) 작곡하여 《헐리우드 노래집》이라는 모음집으로 묶어 발표하였다. 그후 영화음악을 정리한 7중주, 9중주 및 《실내악 심포니》외에도《5개의 오케스트라곡》을 작곡하고, 《우드버리 학교 여학생들을 위한 합창곡집》을 작곡하였다. 그리고 브레히트의 드라마 ‘시몬 마샤의 여러 얼굴’‘갈릴레이 갈릴레오’‘제3제국의 두려움과 비참함’에 음악을 작곡하였다.
3. 동독에서의 음악(1949~1962)
1948년 미국 망명생활동안 반미 활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아이슬러는 미국에서 추방되었다. 미국망명에서 유럽으로 돌아갔던 작가 브레히트가 동베를린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를 받아드린 아이슬러는 1950년부터 동독의 예술아카데미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작곡가로서 활동 하였다. 그 시기 작품은 《미래가》《연대가》《통일전선가》와 같은 투쟁가와 《왼쪽 행진》《스보트닉스의 노래》《시대행진》등 혁명적 연국의 곡들을 작곡하였다. 또 요한네스 베혀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곡한 연가곡《새로운 독일민요》19곡을 작곡하였고, 《큰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를 작곡하였다. 1952년에는 《요한 파우스트》를 음악 없이 텍스트 먼저 발표하였다. 그리고 브레히트와 같이 어리이 노래들을 작곡하였다. 《카알 광장의 포플러》《우아함도 수고도 아끼지 마라》, 칸타타《쿠얀블락의 카펫 직조공들》가곡《타오테킹 책의 탄생을 둘러싼 전설》을 작곡하였고, 브레히트의 죽음 뒤 《코뮨의 날들》《제2차 세계대전 중의 슈베익》을 작곡하고 무대에서 상영시켰다. 그 후 그가 죽기 전에 완성한 연가곡 《바리톤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진지한 노래들》을 작곡하였다. 이곡은 그가 죽기 한달전 인 1962년 8월 작곡한 곡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후 후세에 남기고가 한 마지막 이야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