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라캉 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카사블랑카 관객으로서의 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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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5. 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 관객으로서의 라캉
주이상스! - 초자아를 인식하는 방식
프로이트는 주체가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작인을 세 가지 용어로 나누었다. 이상적 자아, 자아 이상, 초자아가 그것이다. 라캉은 이 세 용어를 명확히 구분해냈다. 이 세 항을 기초 짓는 구조화 원리는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다. 이상적 자아는 상상계로, 라캉이 “소문자 타자”라고 부른 내 자아의 이상화된 분신 이미지다. 자아 이상은 상징계로, 내 상징적 동일화의 지점, 그로부터 나 자신을 관찰하는 대타자 내부의 지점이다. 초자아는 실재계로, 내게 불가능한 요구들을 퍼붓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내 실패를 조롱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작인이자, 내 ‘죄스러운’ 분투를 억누르고 그 요구들에 응하려 하면 할수록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유죄가 되는 그런 작인이다.
라캉은 초자아에 대해 “그 요구가 엄하면 엄할수록 도덕의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작인 중 어느 것이 진짜 윤리적 작인인가? 라캉에게 유일하게 타당한 작인은 프로이트의 세 가지 목록에 빠져 있는, “욕망의 법”이다. 자아 이상은 기존의 사회 상징적 질서의 ‘합리적’ 요구를 따르게 하면서, 욕망의 법을 배반하도록 강요한다. 초자아는 그 과도한 죄책감에서 자아 이상의 필연적 이면일 따름이다. 초자아의 압박 아래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은 환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다.
자아 이상과 초자아를 분리하는 간극의 사례

3과 1/2초 동안 일자와 릭은 대타자(자극하지 말아야 할 공중적인 외관의 질서)를 위해 그 짓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더러운 환상적 상상을 위해서는 그 짓을 했다. 이것은 위반의 구조를 가장 순수하게 보여준다. 할리우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이 모두 필요하다. 이것은 물론 자아 이상과 외설적인 초자아의 대립으로 우리를 이끈다. 자아 이상의 차원에서는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텍스트는 깨끗하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차원에서 텍스트는 관객에게 “즐겨라!”라는 초자아적 명령을 퍼붓는다. 대타자의 눈에는 그들이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음탕한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우리는 수많은 더러운 환상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들 중 어떤 것을 대타자가 주목해서 상징적 법이라는 공중적 차원으로 통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법의 관심은 외관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공의 영역을 침해하지만 않는다면 더러운 상상을 하는 것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미의 타협이다.
공중적 법은 어떤 숨겨진 초자아의 외설성에 의해 지탱된다.
1930~40년대 할리우드 프로덕션 코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어서는 안 되는 과잉을 발생시키는 실정적인 조약이자 규제다.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금지가 단순히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들의 과도한 성욕화를 어떻게 초래하는지 보게 된다. 이런 의도치 못한 도착적 부산물은 상징적 지배 시스템을 실제적으로 위협하기는커녕 그것의 고유한 위반, 그것의 알려지지 않은 외설적 지지대이다.
의 율리시스는 이것을 완벽하게 인식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의 패배 원인을 중앙 집중적인 위계질서의 소홀로 돌린다. 자연적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힘인 시간에 맞서 낡은 가치들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직접적으로 낡은 가치들을 고수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들에 잔인한 조작, 기만, 영웅들끼리의 상호 경쟁 같은 외설적인 ‘현실 정치’를 추가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조화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더러운 이면, 이 숨겨진 부조화뿐이다.
의 ‘코드 레드’는 공동체의 명시적 규칙을 위반하지만, 개인들이 집단 정체성을 갖도록 강력히 압박함으로써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집단정신을 구현한다. 명시적 법이 ‘기록되는’ 것과 달리 초자아의 외설적인 규약은 본질적으로 ‘말해진다’. 의 커츠처럼 권력과의 동일시가 자기 자신의 과잉을 발생시키는 한편, 관타나모 포로들은 호모 사케르로서 법적 권력에 의해 엄호되지도 그것에 강제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법의 영역 안에 남아 있는 텅 빈 공간 안에서 행동한다.
부시 대통령이 “우리는 고문을 하지 않는다” 라고 강조하면서도 존 매케인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 우리는 이런 비일관성을 사회적 자아 이상이라는 공적 담론과 그것의 외설적인 초자아적 보충 사이의 긴장을 예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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