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누구실까 요한복음 1장 1절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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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말씀 누구실까 요한복음 1장 1절 18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요한복음 설교
본문제목 ; 누구실까(요한복음 1장 1절 ~ 18절)
오늘에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18절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는 상당히 진보적인 면과 보수 면으로 나누어서 서로 갈 등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더욱 중요 한 것은 그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편으로는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눈을 돌려 아니면 신문을 통해서 뉴스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북한에서입니다. 그들을 바라 볼 때 아무런 대답도, 더 이상의 물음표와 어떠한 대꾸도 필요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지금의 북한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김정은 아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따르고 그 정권을 수호 하려 하는 가엾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고 또한 그것이 본인들에게는 망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자기네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가난에 허덕이고 굶주림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매일같이 북한에 방송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강도를 높이면서 협박 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스스로 망하기를 바라고 자처하는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어두움에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서울에 어떠한 권사님하고 아드님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권사님이 주일하고 수요일 금요일 하면 그 아드님하고 교회에 나갈 날짜와 그 가야 할 시간이 되면 권사님은 평소에 하시지 않던 목소리 톤을 높여서 아드님한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 나가야 할 시간이 아닌 지여 일어나 나가시지여” 그렇게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년이 넘으신 아드님은 가만히 누워있던지 아니면 방송 채널 앞에서 웃고 갈 시간에 늦장만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 참던 것을 누르고 소리 내어서 “얼른 일어나서 교회 가자”고 하니까 그 아드님이 하시는 말이 “어머님 제가 교회에 가야 할 이유를 세 개만 말해주면 가겠습니다,”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난 교회 보다는 누워있는 것이 좋고 TV를 보는 것이 좋은데 어머님은 나한데 교회만 가라고 하냐고 하면서 제안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던 권사님이 말씀은 “가기 싫어도 가야 합니다, 누워있는 것도 좋으나 그래도 가야 합니다. 알잖아, 그것은 나보다 더 더욱 잘 알지, 안 그래여? 안 그래여?” 했더니 그냥 고개만 흔들고 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님 말씀이 “그래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물었더니 그래도 아무런 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고개를 지으면서 도리어 되물어 보는 것입니다, 아드님이 그랬더니 어머님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럼 그 교회에 목사님이 안가시면 누가 그 교회에 가겠습니까? 교회 성도님들 힘들어도 가고, 정말로 집에서 누워있고 싶고, 잼 나는 오락을 하고 싶어도 참고, 몸이 아프고 정말로 육체와 정신적으로 회사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에 위로와 평온을 얻으려고 교회에 오는 성도님들은 누가 말씀을 먹이고 누가 말씀으로 위로 해 주시겠는 지여. 아니, 목사님은 교회에 가기 싫으면서 주일날 광고에는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전도하라고 광고를 하는 지여” 사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웃음으로 넘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도사님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이것이 사실 그토록 열심을 다하고 있는 우리에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요한복음에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배경과 연대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은 75년부터 100년 사이에 요한저자에 의해서 집필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또 다른 견해는 5단계로 보는 견해와 3단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엑츠 교수님이셨던 김세윤 박사님은 3단계로 보았습니다,
1. 세배대의 아들 예수님이 사랑했던 제자 사도 요한에 의해 에베소에서
2. 그리고 두 번째는 요한의 공동체에 의해서 집필이 보충이 되었고
3. 세 번째는 요한에 공동체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완성된 모습으로 잘 다듬어서 마지막으로 보충과 편집을 하여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 신학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서로 다른 시각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우 주석이든지 핏풀 주석이든지 또 다른 주석에서는 한 저자의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일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는 것과 우리 신본주의 경향과 복음주의 관점에서도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함께 전부가 이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어째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대해서는 제가 지금 설교하는 대상이 일반 성도가 아닌 바로 공부하시는 전도사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요한복음은 그 대상이 누구인가요? 요한복음은 유대인 관습과 모든 것을 잘 아는 유대인들에 쓰였지만 한편으로는 헬라적 배경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헬레니즘 사상에 의해서 영지주의적 사고가 포함되어있는 동시에 헬라 철학적 사상이 들어 있으며 중요한 것은 헬라 이방인들에게 전도의 목적이 있고 동시에 헬라 유대인들에 대해서도 쓰여 졌다, 그러나 강창희 교수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요한복음은 예루살렘 유대인들보다, 헬라 이방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 전도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구약을 관통하는 동시에 신약과 구약과 연결을 해주는 다리이면서도 영적인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만으로 보면 때론 가연성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은 한편으로는 영적인, 동시에 인간으로 오신, 즉 로고스이신 성육신 인간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라는 기독론을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절 “태초에 하나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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