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ne`s `Nineteenth Elegy` Germaine G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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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Donne`s `Nineteenth Elegy` Germaine Greer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Donne and Apostasy
(ACHSAH GUIBBORY)
Comments by Donne in his prose(Letters, Pseudo-Martyr, Sermons)
가짜 순교자(Psedo-Martyr 1610)는 종교에 관한 던의 가장 명백한 성명서 몇 몇 개를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종교·정치적인 논쟁의 일환으로 출판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짜 순교자에서 그는 로마 가톨릭교도들이 그들의 가톨릭 신앙에 대해 충성심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영국 신교 군주에게 정말로 충성맹약을 할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포괄적으로 정의한다. 던은 친척들 중 많은 이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순교’나 추방당한 것과 어린시절 순교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관념 때문에 많은 밤을 두려워하면서 ‘깨어있었다’는 자신의 가톨릭 배경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감히 Christian말고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종교를 부르지 않는’ 사람과 동일시했다. 기독교가 오래되고 계속돼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던은 배교자 아니면 개종자로 이름붙이는 것을 거부하면서 그는 확장한 것이지 바뀐 것이 아니라는 자화상을 제시했다. 1591년 초상화의 모토를 수정하긴 했지만 단호히 부정하지는 않은 (‘변화하기 전에 먼저 죽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과거에 헌신한 의식을 계속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던은 후기 트리엔트 공의회 가톨릭교회를 비판했다. 이는 서로 다른 교부와 논쟁으로 인해 갈라진 기독교국에 신자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위험에 빠트리고, 개인의 양심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63) 이후 로마 교회는 가톨릭교도들에게 새로운 원칙과 의무를 부여했다.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교적 포괄적인 던의 관점은 성직 서임식 전에 쓰긴 했지만 출판되지는 않은 신성에 관한 수상록(Essayes in Divinity)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그는 영국 국교회에 대한 충성을 옹호하고 있으나 로마교회 역시 ‘전 세계적인, 기독교도, 가톨릭 교회’의 부분이라고 언급한다. 이 주장은 로마교회는 구원으로부터 단절됐다고 믿는 ‘열렬한’ 신교도의 시각을 단호히 부정한다.
관대하고 포괄적인 언급들이 비록 당시 종교분쟁의 분위기에서는 비난을 받겠지만 좀 더 사적인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타난다. Henry Goodere에게 쓴 편지에서 던은 종교를 ‘로마, 비텐베르크, 혹은 제네바라는 범위내로 제한함으로써’ ‘결코 종교라는 단어에 족쇄를 차지도 투옥되지도 않았다’고 강조한다. Goodere에게 보내는 또 다른 편지를 보면, 두 개의 교회 모두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쪽이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준다.
포괄성의 균형을 Goodere에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전의 성향(즉, 로마 가톨릭)을 지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Robert Ker경에게 썼던 편지에는 ‘나의 교리는 항상, 내가 태어난 종교의 보존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평화와, 양심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라고 주장한다. 던이 말하는 ‘태어난’ 종교란 어떤 종교를 의미할까? 로마 가톨릭? 적어도 1530년대부터 1560년대를 거쳐 로마교회로부터 거의 독립한 영국 국교회를 뜻하는 건가? 전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톨릭을 말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단순히 기독교라고 말하는 걸까? 그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헌신이 국가의 평화를 우려한 것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가? 만약 종교가 국가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개인의 양심과 국가 문제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만약 종교, 국가, 개인의 양심이 모두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어떤 것을 우위로 선택해야 할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던이 자신의 충절과 신의를 표현함에 있어서, 국가의 평화를 위해 양심을 따르고 과업을 수행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종교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쪽인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매우 사적인 것인데, 던이 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soule’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 편지들은 개인의 훨씬 더 내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임식 이후, 던은 방대한 설교문을 쓰고 설교했는데, 그것들은 논쟁적이지 않았다. 그가 비록 이러한 설교문에서는 때때로 로마(즉, 로마 가톨릭 교회)를 우리의 적으로 언급하지만, 우리는 가짜 순교자나 그의 사적인 편지에서 보편적인 전 세계적인 기독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나 1624년 이후의 설교문을 보면, 그 때는 교회가 제례를 좋아하고 반 칼뱅파인 성직자들과 영국 국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너무나 유사하게 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던 청교도들 사이에 더욱 첨예하고 분열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설교문을 보면 던의 설교에서의 하느님은 세계를 아우르는 관대한 신이다. 던은 신들의 원래 목적인, 작은, 매우 작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의 목소리를 축소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1626년 화약음모사건(Gunpower Plot) 기념식에서 신의 은총은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띄고 있다라는 설교를 했다. 1629년 11월 22일 성 파울 거리에서 한 설교에서, 던은 롯(loth,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조카)이 그의 손으로 그리스도를 널리 퍼지게 했고 혹은 그 십자가에서 떨어짐으로써 피를 흘리게 한, ‘지나친 순수(over-pure)’에 대해 비판했다.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에게 선택된 사람들이고, 그 모든 지은 죄는 다른 이들을 하느님에게 버림받는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협하게 종교적 경계를 긋는 사람들, 혹은 신의 은총에 한계를 짓는 열렬한 운명예정설 신봉자인 칼뱅파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던은 개인적 욕망과, 가톨릭 가족과 조상들 모두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들과의 영속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확신이 필요했음을 반영할 수도 있다.
던의 종교에 대한 논쟁-그가 영국 국교회인지, 순응자인지, 아니면 다소 가톨릭 요소가 남아있는지 어느 범위에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던이 서임식 후에 쓴 종교 산문들을 학자들이 얼마나 다르게 읽는지에 영향을 끼친다.
Donnes poetry : the preoccupation with faithfulness, truth, change, conversion
우리는 각각의 시가 언제 쓰여 졌는지 몰랐기 때문에 던의 시를 직접적으로 그의 종교적 궤도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Elizabeth Drury(1611-1612)죽음의 Anniversaies와 Goodfriday는 이례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심지어 거룩한 소네트의 시기도 불확실하다. Gardner를 뒤이어 Bald와 최근 비평가들은 거룩한 소네트는 던이 절망으로부터 고통을 받으며 Micham에 있는 동안에 쓰여 졌다고 추정한다.
I dare not moue my dimme eyes any way,
Despaire behind, and Death before doth 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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