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까지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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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Ⅰ. 들어가며
- “원수 사랑의 윤리” 현실 가능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떻게 예수님처럼 같이 살 수 있어?” 라는 질문은 예수님처럼 닮아 가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똑같이 원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는 못할 거란 의미일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 땅에서 실현될 말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서 실현 될 수 있는 하늘나라 윤리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정의의 구현을 위해서는 이따금 정의의 칼을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어 분노하는 이의 폭력도 수용하라고 말씀하신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 주라고 하신다. 이것은 역설의 윤리이다. 이런 예수님의 윤리 역시 ‘과연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사회에서 한 집단의 구성원이 될 경우 우리의 도덕적 수위는 한층 낮아진다. 개인이 공동체를 이룰 때는 ‘집단적 형태의 야심’이 드러나게 된다. 그 실례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세계 1, 2차 대전을 통해서 보았다. 독일과 일본 개개인의 사람들이 나쁜 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독일인들의 검소함과 근면함과 일본인들의 성실함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예의 바른 태도는 차라리 결벽증에 가깝다. 이러한 이들이 집단이 되면서 개인의 지성적인 삶의 태도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집단의 가학적 유전자가 발동한다. 또한 개인의 이기주의적 충동은 개별적으로 신중하게 표현될 때 보다도 공동의 충동으로 연합될 때 더욱 생생하게 표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인홀드 니버는 윤리를 이상과 현실과의 긴장관계로 본다. 라인홀드 니버는 윤리적 사고에 있어서 최상의 선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이고 이 가치는 너무나 숭고한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완전한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의 근사치적 실현만이 가능한 것인데 그것을 라인홀드 니버는 정의라고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라인홀드 니버는 그 유명한 “불가능의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라인홀드 니버는 그것이 불가능한 근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자연 안에 육체를 기지고 사는 인간은 이기심을 완전히 버릴 수 없기 때문에 희생적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다. 즉, 예수의 윤리는 이기심의 완전 포기를 의미한다.”라고 보았다.
결국 라인홀드 니버는 예수의 사랑의 윤리는 역사 안에서 실현 불가능 한 것으로 보았다. 사랑이 정의를 위한 계속적인 자극은 되지만 직접적인 작용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사회에서는 집단의 이기주의 때문에 사랑을 완전히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보았다. 니버는 하나님의 가능성보다 인간의 불가능성에 더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라인홀드 니버의 사랑에 대한 이해는 직접적인 성서 연구에 기초한 것이기보다는 자유주의나 사회복음의 해석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그러므로 사랑의 성서적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Ⅱ. 본론
1. 경철복음
예수의 윤리적인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그가 선포한 하나님나라의 빛 속에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나라 선포는 항상 구체적인 삶을 향한 윤리적인 교훈으로 이어진다. 예수는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윤리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예수의 윤리를 종말론적인 윤리 혹은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나라 윤리라고 한다. 미래를 향하여 열려 있는, 그러나 이미 현재 실천되고 있는 삶이다.
실천해야 할 삶의 내용은 ‘사랑’이고, 하나님나라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 예수의 윤리의 형식적인 테두리라고 한다면, 사랑은 하나님의 다스림의 내용적인 응어리라고 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비로소 인간 사랑을 가능하게 하며 또 요청한다. 예수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유대교와 유대인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환경 속에서 이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했으며 요구했다.
유대교와 유대인들의 신앙과 삶을 지배한 것은 구약성서이다. 구약성서의 율법 전체가 말하는 윤리적 내용의 본질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예수의 윤리의 핵심도 사랑이고, 구약성서와 유대교의 윤리의 핵심도 사랑이다. 구약성서와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사랑이해와 비교해 보아야한다. 이스라엘의 종교와 역사가 보여주는 사랑의 이해는 예수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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