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과 화장품 화장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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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화장과 화장품 화장품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화장품 : 사람의 얼굴모발손손톱발톱 등을 아름답게 하거나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조제된 물질. 고대부터 사용되어왔으며, 근대에와서는 화장품 제조업이 주요산업으로 부상했다.
◎역사적 발달
○서양
(1) 기원 : 화장품에 대한 초기 기록은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BC 3000년경 티니스 왕조시내의 죽은 왕과 함께 묻힌 화장품과 연고가 발견되었고, BC 1500년경에 사용된 콜먹과 안티몬연필 및 나아드 향 덩어리가 그려진 그림도 발견되었다. 투탕카멘왕의 무덤에서는 향료를 담은 연고병이 발견되었다. 이 당시는 주로 성직자들이 이런 물질을 조제했으며, 화장품을 만다는 일은 비밀스럽고 존경받는 일이었다. 화장품 성분의 수와 종류는 단순하며, 이집트산 백리향과 오리가넘이 발라노스라는 물질과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나 기초 성분은 대부분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몰약유향감송이었고, 편도와 올리브유는 물론 참기름도 향유로 사용되었다. 목욕통은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목욕통이 보다 정교해졌고, 피부를 부드럽게 하거니 색을 내기 위해 향유연고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장품은 천연재료를 사용해 미를 가꾸려는 이집트 여인들에 의해 발달되어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이집트의 무덤과 회화를 보면 눈 화장을 중시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화장법은 20세기 후반에 유행하는 눈 화장과 매우 유사하여 눈두덩은 녹색으로 칠하고 눈꺼풀속눈썹눈썹은 안티몬으로 만든 콜먹으로 검게 칠했다. 그밖에 헤나 물감으로 손톱손바닥발바닥을 염색했으며 빗과 청동거울도 사용했다. 성서의 9장 30절, 23장 40절 4장 30절 등에는 유대 여인이 화장품을 사용한 기록이 있고, 《코란》56장에도 눈화장에 대한 언급이 있다.
(2) 로마 시대 및 르네상스 시대 : 로마인들은 초기에 외모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네로가 등극한 AD54년경부터는 화장품과 향수가 궁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에서는 연백과 백악으로 피부를 하얗게 하고 이집트 콜먹으로 눈꺼풀과 속눈썹을 칠했으며, 볼과 입술에 바르는 루즈의 일종인 푸쿠스, 탈모제의 일종인 프실로트룸, 여드름과 피부 발진 치료를 위한 보릿가루와 버터, 치아 미백을 위한 경석 등도 사용되었다. 유행에 민감한 로마 여인들은 갈리아 지방에서 전해진 비누로 머리를 표백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기본적인 향수와 화장품에는 순수한 연고, 액체연고, 가루향수의 3종류가 있었다. 화장품의 사용은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으나, 십자군에 의해 동양의 화장품이 유입되어 크게 유행했다. 더운 물 목욕과 포도주 세안이 피부미용을 위해 선호되었고, 우유 목욕이 행해졌으며, 가루분, 검은 헝겊, 향수가 사용되었다.
(3) 근대 : 18세기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화장이 성행하여 화장품 사용과 인위적인 몸치장에 법적인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공개적인 화장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 식민지 아메리카와는 달리, 이탈리아와 프랑스 궁전에서는 화장품 사용이 선호되어 과학적 토대 위에서 미용용품을 제조하게 되었다. 미국의 화장품역사는 유럽과 비슷했으나 토착 인디언들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고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미용품을 꺼리던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주의도 미국의 화장 습관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는 화장품 개발과 제조의 선구자였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화장이 허용되기 전부터 화장을 해왔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의학과 유기화학이 급속히 발전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후 화장에 대한 반대와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한 이래 20세기 후반에 들어 다양한 화장품이 나타났다.
○동양
(1) 서아시아와 인도 : 서아시아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바빌로니아아시리아시대부터 이미 눈썹을 그렸으며, 연지나 백분을 사용하는 화장법이 있었다. 또 공작석의 녹색 분말로 눈 주의를 물들이는 아이섀도와 손톱을 빨갛게 칠하는 매니큐어가 유행했다. 특히 9~10세기의 아바스 왕조 시대에는 화장사 직업도 생겼으며,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아이섀도와 매니큐어로 치장하는 일에 골몰했다 또 상류사회의 여인들은 얼굴의 털이나 체모를 족집게로 전부 뽑고 온 몸에 아르메니아산 황토를 발라서 문대는 풍습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눈썹을 청색으로 그리는 풍습과 눈썹 사이에 꽃잎 또는 별 모양의 무늬를 그리는 화장법이 행해졌으며, 이러한 화장법은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다. 눈썹 사이나 이마에 꽃을 그리는 것은 원래 고대 인도에서 종교종파를 구별하기 위한 상징이었는데, 서역에 전해지면서 일종의 화장법으로 유행했다. 동서 교류의 발달에 따라 이 화장법과 함께 호분자황연지 등의 화장 원료도 중국에 전해졌다. 또한 향유향료수 등도 많이 유행했는데, 금안향침향 등 명품의 원산지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였다.
(2) 중국 : 6세기의 《시경》에 보이는 ‘아미’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에 관한 기록이다. 여성의 눈썹은 곤충의 더듬이처럼 가늘고 긴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되어 있으므로 귀부인들은 앞다투어 숯이나 목탄으로 눈썹을 그렸다. 이처럼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풍습은 그 수 2,000년 이상 전래되었으며, 특히 당대의 회화나 시에 이러한 눈썹을 가진 여인이 자주 등장한다. 입술연지나 백분도 미묵과 마찬가지로 예부터 중국에서 사용된 화장품이며, 이것을 합해서 지분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BC 4세기의 문헌에 자주 나타나며, 그 시대의 유적에서 출토한 화장구 에서는 그 잔유물이 나왔다. 초기의 백분은 연백이나 활석이었으며, 입술연지에는 은 화합물의 전사, 적토가 쓰였다. 한대(漢代)에 들어와 여성의 화장법은 급속히 발달했다. 기름에 개어서 만든 백분이 등장했고, 얼굴은 물론 목과 어깨에까지 백분을 발랐으며, 송진과 납을 섞은 포마드로 머리를 다듬는 것이 유행했다. 또 미묵에 황토를 써서 그리는 황미, 슬픔을 머금은 듯하게 그리는 수미, 눈 밑의 백분을 일부러 벗겨서 운 듯이 보이게 하는 체장 등의 독특한 화장법까지 고안되었다. 4세기경의 작품인 고개지의 에는 머리를 땋은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어떤 여인이든 이마 주변이 일(一)자 또는 십(十)자의 황선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마 주변의 머리칼을 정리하기 위한 화장법으로 액황 이라고 했다. 이 풍습은 한대초에 몽골 등의 주변 유목민족에게 전해져 널리 중앙 아시아까지 유행했다. 한대말인 3세기경에는 서역과의 교류가 성행하여 멀리 서아시아와 인도의 화장법이 중국 여성들에게 유행하게 되었다. 당대에 들어서 지분과 눈썹을 진하게 그리는 화장은 그 절정에 달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백분을 칠한 후에 붉은색 또는 연지로 붉은빛을 띤 홍장을 하는 것이었다. 입술도 한층 아름답게 치장했고, 궁중의 여인들은 다투어 홍분 화장을 했다. 또 전대부터 이어내려온 황액도 행해졌고, 눈썹을 그리는 일은 한층 성행했다. 그밖에 인도에서 전해진 눈썹 사이에 꽃 모양을 그리는 일, 양쪽 뺨에 보조개를 그리는 일 등이 성행해 여인의 화장은 완성된 정형을 이루어 농염한 것이 되었다. 당대 이후는 대부분 당대 화장의 답습이었으며, 이들의 화장법은 그 재료와 함께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한국
(1) 고대 : 한국 고대의 화장은 선사시대 페총에서 출토된 원시적인 장신구, 즉 조개껍질짐승뼈 등으로 만든 목걸이팔찌관옥곡옥 등으로 보다 그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북동에 거주했던 읍루인들은 겨울에 동상예방과 피부연화에 돼지기름을 이용하며, 말갈인들은 피부미백을 위해 오줌에 세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낙랑의 유물인 채화칠협 그림의 인물상에는 이마 주변의 털을 뽑은 흔적이 뚜렷하며 굵고 진하게 눈썹을 그린 점으로 보이 이 시대에 이미 기본적인 화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마한변한사람들은 원시화장의 일종인 문신을 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