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라보는 두 시각-물질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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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세계를 바라보는 두 시각-물질과 정신
1.철학의 근본문제
철학의 학설이 아무리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공공연하게 또는 암묵적으로 의식(consciousness)과 존재(being),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상호관계의 문제를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모든 철학,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존재와 사고(thinking)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F. Engels, “Ludwig Feuerbach and the End of Classical German Philosophy”, K. Marx and F. Engels, Selected Works, in three volumes, Vol. 3,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70, p.345. 편집부 編,철학의 기초이론, 두레, 1986.12.01., p.16.
철학의 근본문제는 우리 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사실들 가운데 놓여 있다. 그렇다. 세상에는 물리학적이거나 화학적인 현상과 같은 물질적인 현상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고나 의식과 같은 정신적인 현상도 존재한다. 사고와 존재, 주체와 객체의 구별은 인간이 행하는 의식과 행동의 어떤 부분에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분하며, 자신을 다른 모든 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현상이건 그것은 물질적인 것(객관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주관적인 것)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사이에는 서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관련성이 있으며 의존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무엇에 의존하는가?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이 결과인가?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객관과 주관 중에서 무엇이 1차적인 것이고 무엇이 2차적인가? 앞의 책, p.17.
이처럼 철학의 근본문제는 정신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의식은 객관적인 세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답은 그들을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 놓았다. 자연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세계창조를 상정했던 사람들……그들은 관념론의 진영을 구성했으며, 자연의 우위를 주장했던 다른 사람들은 유물론의 여러 학파에 속하게 되었다.”-앞의 책, p.346. 앞의 책, p.18.
2.유물론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us)이란 무엇인가? 이희승 편『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주 만유의 궁극적 실재는 물질이라고 보고 정신적·관념적 일체의 현상을 이에다 환원시켜 고찰하려는 철학설.” 강대석, 『유물론과 휴머니즘』,이론과 실천, 1991.11.30., p.5.
유물론이란 물질과 의식의 관계에서 물질이 1차적이고 의식 혹은 정신이 2차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 조류이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뿐이고 인간의 정신은 물질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론이다. 앞의 책, 같은 쪽
우리나라의 철학이 너무 유물론을 금기시하고 관념론만을 고집한 결과 일반 사람들은 물론 어느 정도 철학을 습득한 사람들도 유물론을 오해하고 있다. 예컨대 유물론을 곧바로 공산주의 사상과 직결시켜 위험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것은 반공이데올로기가 낳은 매우 유치한 오류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과학적인 공산주의 사상의 창시자인 맑스 이전에도 많은 유물론철학이 존재하여 인류의 역사발전에 기여하였다. 물론 유물론이 맑스주의의 형성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며 맑스주의도 일종의 유물론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의 유물론은 변증법이 가미된 특수한 형태이며 맑스가 이미 그 전의 유물론을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강대석, 『왜 유물론인가?』, 중원문화, 2012.06.15., p.11.
유물론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유물론을 물질만능주의를 유발하는 사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로마 초기의 유물론 철학자 에피쿠로스(Epikuros, B.C. 341년경~B.C. 270년경)도 비슷한 오해를 받았다. 유물론철학 때문에 곤경에 빠진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온갖 저속한 소문을 퍼뜨려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비방하려 했지만 결국 그것은 인신공격으로 끝나고 그의 유물론철학이 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앞의 책, p.12.
유물론은 물질이 인간의 의식에 앞서서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주장이며, 물질이 정신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은 가장 발전된 물질형식이므로 가장 고귀하다는 것을 이미 그리스의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가 밝혀놓았다. 물질을 정신보다 중시하는 황금만능사상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가치척도가 만들어 놓은 것이며 자본주의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는 각종의 관념론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앞의 책, 같은 쪽
많은 사람들은 실천을 중시하는 실증주의나 실용주의가 유물론적이라 오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철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에 앞서 물질이 그 자체로 존재하고 인간의 의식은 그 물질로부터 파생한 존재라는 철칙을 유지해야 한다. 실증주의나 실용주의는 모두 그것을 부정한다. 이들은 신이나 절대정신을 부정하는 점에서 플라톤이나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과는 다르지만, 사물의 본질이 아닌 현상이나 그와 관계되는 인간의 지각을 사물의 근거로 절대화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영국경험론에 가반을 둔 주관적 관념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앞의 책 같은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