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유학1-양수명, 웅십력, 모종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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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유학1-양수명, 웅십력, 모종삼철학
양수명 : 현대적 의미로서의 최초의 유가
양수명은 1920년대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신이 학자는 아니며 애초에 학문할 생각도 없었고 만약 학문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우연히’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양수명은 어떤 특정한 분야의 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철학과 문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향촌건설이론에 대한 연구는 모두 어떤 특정분야의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인생에 대한 보편적 의미를 추구하고 중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활로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학문을 하기 위해 학문을 했던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사상가로서 자기 자신을 우주나 사회 그리고 인생과 연관시켜 인식하여 그 결과를 함께 나누려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시 사회에 영향을 주고 사회를 개조하려고 시도한 사상가였을 뿐이다. 좀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그는 단순한 사상가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사상과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과 관점이 사회를 개조하는 데 기여하게 하고자 했다. 1980년대에 있었던 몇 차례의 강연에서 그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일을 해내는 사람이고 실천가이며 특히 왕학을 존중하는 실천가라고 거듭 밝혔다. 이처럼 그의 사람됨과 학문됨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성격으로, 전통문화를 선양하는 방면에서 보여준 그의 강렬한 사명감은 그가 한 사람의 유자다운 풍모를 보여 주었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68~169
양수명의 사상을 연구하게 되면 논의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것은 양수명의 이론체계 속에서의 유가와 불가 두 사상의 지위문제이다. 양수명은 동방문화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동방문화파 진영에는 불가로 볼 수 있는 것, 또 유가로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유가로도 볼 수 있고 불가로도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통 털어서 다 같이 동양문화로 인식되었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73
양수명은 인류 사상문화의 발전단계와 심도를 기준으로 말하면 분명히 불교가 유학보다 높은 단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도의 불교가 인류문화발전의 미래와 귀결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였다. 양수명은 인심과 인생에서 “종교의 진수는 오로지 고대 인도에서 일찍 성숙했던 불교에서 볼 수 있다. 그 도는 장차 공산주의사회 말기에 크게 성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수명은 또 당시 중국에 요청되던 것은 불교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중국에서 불교문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74~175
그는 자신이 일생동안 추구해 마지 않았던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첫째는 인생문제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문제이며, 둘째는 사회문제, 곧 중국문제로 중국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내 자신에게는 항상 모순된 것이었다. 뒤에는 중국문제가 점차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인생문제는 그 다음의 지위로 물러났다” 이처럼 출세와 입세, 이성과 종교의 모순이 양수명의 내심 깊은 곳에 시종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바로 그가 말하는 것과 같이 “중국문제가 점차 주도적 지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강렬한 사회적 책임감이 피안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압도한 것이었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75
현대유학자
현대유학자라고 명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어야 한다. 우선, 그의 유가학설에 대한 긍정이 반드시 반성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쳐야 한다. 또 이러한 긍정에는 이지적 선택이 포함되어야 하며 단지 맹목적이거나 정감적 동경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그의 이론체계에는 반드시 전통유학에서 지니고 있지 않았던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내용은 주로 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흡수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셋째, 그것은 서양의 문화적 도전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유학의 어떤 사상과 관념을 새롭게 해석해야지 단지 옛 것을 끌어 안고 묵수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즉 옛 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수구만 하는 완고한 사람을 ‘현대유자’라고 일컬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몇 가지 측면으로 고찰해 볼 때 양수명은 ‘현대유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긍정적이다. 양수명은 더 나아가서 베르그송철학에 의거해서 문화철학의 형태적인 기초를 수립했다. 그는 생활과 생명의 기저에는 ‘다함이 없는 의욕’이 있으며 ‘의욕’이 노력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마침내 각각 다른 문화적 진로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서양문화는 의욕을 추구하고자 하는 요구를 근본정신으로 삼기 때문에 향외적 추구에 치우쳐 이지를 숭상하고 일의 성취를 주로 하며 자연외물에 대한 개조와 점유를 중시한다. 중국문화는 의욕을 조화하여 중용을 지키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삼기 때문에 자기성찰을 중시하고 정신적 자득과 인간관계의 화해를 추구한다. 인도문화는 의욕을 절제하여 줄이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삼기 때문에 종교적 초월과 세속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한다. 이것은 이른바 인간과 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신의 생명에 대한 세 가지의 각기 다른 문화형태이다. 양수명은 또 인류문화의 발전추세로 말하자면 서양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인도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77~179
양수명이 주장한 삼단계발전론의 문화관은 주관성과 독단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인류의 다채롭고 풍부한 문화형태를 단순히 세 가지 유형으로 귀속시킨 것은 이미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로 파악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다함이 없는 의욕’으로만 생명의 본체를 규정한 것은 아무래도 그가 유가의 인생태도와 도덕정신을 긍정한 것과는 모두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처럼 천도를 체현한 지선한 성체는 의욕을 추구하는 것, 의욕을 줄이는 것, 그리고 의욕을 조화하여 중용을 지키는 것, 이 세 가지와 어떤 관계인가? 이것에 대해 양수명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79
양수명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을 수립하지 못했고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문화발전방향과 인생태도였다. 신유가철학의 본체론에 진정한 기초를 수립한 것은 웅십력이다. 양수명의 이론은 정서를 지나치게 과장하였으며 논리적 논증이 결어되어 있다. 다만 그는 문화비교를 통해서 민족성원칙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과학일원론 및 공리주의와 실용주의적 인생태도를 반대하여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자기성찰을 주장하여 모든 사람이 본래부터 소유하고 있는 도덕 직관을 서술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현대신유가의 기본적 노선을 반영한 것이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80~183
신유가철학의 기초자 : 웅십력
병약한 몸 속에 오히려 강한 생명을 담고 있었고, 구차하게 세속을 따르지 않았으며, 고독하게 세상을 살아 간 사람이 바로 웅십력이었다. 웅십력 철학은 확실히 현대신유가의 기본 특징을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그는 기본적인 방면에서 현대신유학의 발전에 참조할 만한 사고의 틀을 제공하였다. 양수명이 문화 철학과 인생 태도의 측면에서 현대신유가의 진로로 밝혀 주었다고 한다면, 웅십력은 신유가철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닦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가동 저, 『현대신유학』예문서원, 1993 p193~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