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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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누구나 황진이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만큼 황진이를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 문학문제집에서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를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시간을 새롭게 표현한 시어에 반해 황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기록이나 문헌들은 기생으로서의 황진이와 덧씌워진 야사 속에서의 황진이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황진이는 지극히 단편적이다. 기록은 “일명 진랑, 기명 명월, 개성 출생 중종 때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을 읽고 시, 서, 음률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다 15세 무렵에 동네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자 기계에 투신하고, 문인, 석유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천마사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을 표현했다.” 이 처럼 많은 문헌이나 기록에서도 황진이는 풍류를 아는 여성으로 스스로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한 여인으로 혹은 유고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을 비꼬는 여성으로 묘사되어 왔다.
황진이를 소재로 다룬 소설을 많다. 그러나 「나, 황진이」가 특별한 점은 황진이가 스스로 황진이 다운 문체로 당대의 음악가이자 춤꾼이며, 시인이고 인간의 도를 깨우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황진이는 지극히 남성적인 시선으로 기록된 것이 전부이다. 「나 황진이」속의 황진이는 기록속의 절세기녀나 야사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기생이 될 운명을 지녔으나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능동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소설은 어떤 한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역사소설은 어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상상하여 추상적인 모습을 서술하기 때문에 인물의 주관적인 면에 중점을 둔다. 김탁환의 「나, 황진이」와 전경린의 「황진이」는 같은 황진이를 소재로 다룬 소설이지만 두 작품에서 황진이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경린의 「황진이」는 흔히 전해져 내려오는 야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어 여성작가의 글이지만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황진이의 모습을 보이고, 김탁환의 「나, 황진이」는 황진이가 스스로 자신에게 씌워진 야사의 진실을 스스로 밝혀내는 형식을 취하며 남성작가지만 지극히 여성적인 문체로 쓰여졌다. 즉, 전경린의 「황진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황진이의 이야기이고, 김탁환의 「나, 황진이」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고 또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인간 황진이로서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이유는 자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게 되어 그를 애도하는 마음 때문 이다 라고 흔히들 알고 있다. 그러나 「나, 황진이」에서 황진이는 자신은 오래 전부터 기생의 길을 걷고자 이미 수업을 받아왔고, 그의 이름도 나이도 얼굴도 알려하지 않았다며 그를 위해 딱 이틀정도 생각한 것이 전부라고 해명한다.
전경린의 「황진이」에서 여성으로서의 황진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유수와 시를 나누는 등 황진이의 첫날밤은 굉장히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나, 황진이」에서 황진이는 열여섯의 나이로 관기가 되어 첫 밤을 치르게 되는데, 첫 밤을 함께 지낸 사내의 바지저고리를 찢어 아궁이에 던져버림으로서, 첫 밤을 함께 지낸 사내의 바지저고리를 평생 간직하는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황진이의 첫 밤은 권세와 관습의 시대에 머리를 숙이는 삶을 경계하면서, 여성으로서, 기생으로서의 삶이 아닌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마음먹는 계기가 된다. 관기가 된 황진이는 오로지 시와 음악에만 마음을 움직이며 공부를 하기 위해 새로운 지음을 찾기 위해 관기를 그만두려 돈을 번다.
황진이가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 스승인 새끼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쳐왔다. 죽고 사는 문제에 휩싸여 음식을 거부한 채 밖에 나가지 않는 진이를 걱정한 외숙부는 진이를 천수원으로 데리고 가서 한양 제일의 소리꾼이라는 이사종을 만나게 한다. 전경린의 황진이에서는 황진이와 이사종이 3년은 황진이의 집인 송도에서. 3년은 이사종의 집인 한양에서 함께 살기로 약조하여 그것을 지켰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나 황진이에서는 어찌어찌하여 이사종과 6년의 함께 한 것은 사실이나 날짜를 맞추었다는 풍문은 자신의 삶을 숫자에 묶어 조롱하려는 것이므로 논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며, 자신의 속 깊은 사랑을 가리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대부들의 애꿎은 돌팔매질이라 이야기 한다. 이사종과 동거를 하던 중, 어머니가 포창(매독)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이사종과 이별을 하게 된 황진이는 맨발의 자유로운 지혜를 얻기 위해 이생과 4년간 의 유람을 떠나게 된다.
나, 황진이에서 황진이는 지족선사, 화담 서경덕과의 첫 만남을 사내들이 내기로 바꾸었다며, 원래는 송도 근방에서 가장 존경받던 인물인 두 분의 거처와 제자들을 살피기 위해 길을 나섰다고 이야기 한다. 지족선사와의 만남은 그저 스쳐간 만남일 뿐, 의 파계는 자신 때문인지 속세에 들지 않고는 풀지 못할 화두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족선사는 더이상 자신을 찾지 않았으며, 화담 서경덕과는 사제관계를 맺어 가르침을 받았지만 뭇사내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나, 황진이」에서 황진이는 허태휘의 청을 받아 자신의 스승인 서경덕과 지냈던 꽃못에서의 일을 추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뒤로 갈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황진이를 다룬 많은 소설에서 양반가에서 서녀로 자란 황진이에 대해 이야기 하며 황진이를 사모하여 상사병에 걸려 죽은 청년의 일화를 들어 황진이가 기생이 된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나, 황진이」에서는 황진이가 행수기생인 새끼할머니와 눈먼 기생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황진이가 어렸을 때부터 기생수업을 받아온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황진이의 외가는 아전-기생 집안으로 황진이의 아버지인 황진사는 황진이의 어머니인 진현금과 사랑을 나눌 때 빼고는 황진이의 삶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양반이었던 황진사가 눈먼 악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황진이에게 관심을 가졌을 리 없고 황진이는 외가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생의 삶을 익혀나갔다. 황진이가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거문고를 가까이 했고, 음률과 시에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름을 날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작가는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나, 황진이」에서 작가는 황진이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을 위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 서술하게 함으로서 더욱 그 사람의 심리적 상황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인 것이다. 나, 황진이에서 황진이는 흔히 알려진 일화나 야화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세간에 떠도는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면서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아픔을 이야기 한다.
「나, 황진이」는 소설과 주석판이 따로 나왔는데, 소설에는 수묵화가 함께 실려 있고, 주석판에는 6백여 개의 주석이 소설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주석판의 소설은 소설보다 더 많은 주석에 처음 책을 펴면 이 책이 과연 소설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 주석 때문에 소설을 읽는 중간 맥이 끊기기는 하지만 작가가 「나, 황진이」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헌을 조사하여, 철저하게 황진이가 되기로 했는지 알 수 있다. 즉, 소설속의 주석은 한 문장 한 문장이 황진이 본인의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황진이는 스승인 화담 서경덕에 대해 아주 절절한 애정을 보인다. 이 애정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갈구와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로서의 황진이를 가장 강조하여 표현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황진이의 삶을 통해 이야기 하면서, 황진이가 운명에 맞서 싸우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서는 순간들을 부각시키며, 기생의 삶이 아닌 그 당대의 지식인들의 슬픔과 고뇌, 희망과 좌절을 이야기 한다.
태어날 때부터 기생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이 여인은 자신의 태생적 한계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며, 기와 예가 바탕이 된 삶을 살았지만 그 화려한 삶속에는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신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시대의 울분이 들어있었다. 황진이는 학문과 재능이 뛰어났으나 결국 역사 속에서 기생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유로운 인생으로 거듭나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기생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황진이를 「나, 황진이」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