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관노가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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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강릉관노가면극
시작하기전 가면극이란?
가면극이란 연기자의 일부 또는 전원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등장하여 연풀하는 극으로, 가면희 또는 탈놀음이라고 불린다. 가면이 연극에 사용된 것은 문명사회를 막론하고, 민족이나 기대의 예전과 지금을 초월하게 한다. 가면은 얼굴을 가리는 특수한 조명품 또는 미술품으로 특정한 목적이나 용도를 지닐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과 동물, 초자연적인 존재 즉 신등을 나타내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므로 자연물이나 동물에게도 영혼이나 신성이 깃든다고 믿었던 시민족들은 가면이 인격을 변화시키는 매개물이라고 믿었다.
- 강릉관노가면극의 유래 조사
는 타지방의 가면극과는 달리 연희자가 관노들이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징으로 인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강릉 탈춤’, 또는 ‘강릉 탈놀이’라고 통칭이 되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한국의 가면극 중 유일하게 무언극으로 이뤄져있으며, 대사 이전에 춤과 몸짓으로 연희가 구성되어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의 처음 기원을 찾아보면 하회별신굿놀이나 동해안별신굿과도 상호 관계를 주는 근접성을 가진다. 또한 마을 축제인 단오제에서 연희되고 있기에 특정한 장소와 시간 배경에서 형식에 따라 행해진 다는 것을 말할 수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서낭제에서 연희되므로 토속적인 농경의례와 무속 서낭제와 가깝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주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굿이였으마 점차 인간과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예술적으로 바꾸면서 탈놀이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이 마을 축제인 농경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강릉의 고대 지역인 예국의 무천의식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부락제에서 연희되어 왔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 할 수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1909년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67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강릉관노가면극의 내용
총 5과장으로 나뉘는 형식의 극이다.
제1과장에서는 탈놀이 시작과 함께 포대자루와 같은 포가면을 전신에 쓴 2명의 장자마리가 연희를 개시한다. 요란하게 먼지를 일으키고, 불룩한 배를 내밀면서 놀이마당을 크게 휘젓고 넚히기 시작한다. 그들은 관중을 희롱하기도 했고, 선사람을 앉히고 모의 성적인 행위의 춤도 서슴치않고 춘다. 장자마리 옷의 표면에는 말치나 나리등 해초와 곡식을 매달고 속에는 둥그런 대나무를 넣어 배를 불룩하게 만든다. 그들을 희극적인 시작을 유도하며 마당을 정리하는등 해학적인 춤을 춘다.
제2과장에서는 양반광대, 소매각시가 장자마리의 상황이 끝나고 양쪽에서 등장한다. 양반광대는 뾰족한 고깔을 쓰고 긴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고 위엄있게 등장하여 소매각시에게 다가가 구애를 한다. 소매각시는 얌전한 탈을 쓰고 노랑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고 수줍은 모습으로 춤을 춘다. 소매각시는 처음에 양반광대의 구애를 거부하다가 점차 서로 뜻이 맞아 어깨를 끼고 장내를 돌아다니며 사랑꽃을 피운다.
제3과장에서는 시시따딱이의 훼방이 보여진다.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형상의 탈을 쓰고 양쪽에서 엄청난 칼춤을 추며 뛰어나온다. 시시딱딱이는 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사랑에 질투를 느끼고 훼방을 놓고, 때로는 밀고 잡아당기며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시시딱딱이가 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사이를 갈라 한쪽에서는 양반광대를 놀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매각시를 희롱하며 함께 춤을 추기 원하나 거부당하기만 한다. 결국 소매각시는 시시딱딱이와 억지춤을 추고 이것을 본 양반광대가 크게 분노하고 애가탄다.
제4과장에서는 소매각시의 자살소동이 보여진다. 분통해 하고 있었던 양반광대가 마침내 시시딱딱이를 밀치고 나와서 소매각시를 끌고 나온다. 소매각시가 잘못을 빌어도 양반광대는 계속 그녀를 질책한다. 그래서 소매각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양반광대의 긴수염에 목을 맨다. 여기서 수염으로 목을 감는 소매각시의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며, 그때당시에 권위의 상징이었던 수염을 당겨 결백을 시인케 하는 내용은 풍자적이기도 했으며, 죽음의식을 초월하게 된 희극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제5과장에서는 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화해의 내용을 다룬다. 수염에 목을감고 자살을 시도하며 결백을 증명했던 소매각시의 의도는 양반광대의 관용과 해학으로 이끌어져 서로 오해가 풀리고 결백함이 증명되어서 놀이는 화해와 공동체의 흥겨운 마당놀이로 끝을 맺는다. 이때 음악을 담당하더 악사들과 괘대, 구경하는 관중이 함께 어울려 군무를 하며 부락제 의의를 표현하다. 이 탈놀이 서민들의 울분과 양반들에 대한 반감을 풍자하고 있으며, 연희자들이 원래 관노들이었기 때문에 대범하게 양반을 조롱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릉관노가면극의 특징
강릉관노가면극은 경상도 화회별신굿 탈놀이와 예천청당놀이, 함경도이ㅡ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마을 탈춤의 한 유형이다. 강릉단오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을때 큰역할을 하였고 단오제 기간동안 베풀어 졌다. 강릉관노가면극은 다른 가면극에서 볼수 있는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나 저항의식보다는 근본적으로 단오제라는 행사와 같이 하나의 놀이로써 오락적인 기능을 함축하였다. 이와 동시에 지방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고, 지방수호신에게 제사하는 의식과 깊은 연관을 가진 서낭제 가면극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가면극은 지방마다의 득유의 향토성과 주민성을 잘 나타냈으며, 단오제 떄에 행하여지는 모든 풍습들과 함께 잘 보전되어 있음을 증명하였다.